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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밍의 기술

[FETV=권지현 기자]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다. '트래블로그, SOL트래블, 트래블러스, 위비트래블' 차이점을 알고 있는지. 

 

'트래블(travel)' 단어에서 짐작건대 여행 관련 상품이라는 것, 이중 은행 이슈 좀 안다하는 몇몇 소비자는 'SOL=신한은행' '위비=우리은행' 공식 정도만 알고 있을 확률이 높다. 

 

올해 금융권 최고의 경쟁상품인 '여행 특화 체크카드' 출시를 위해 금융사들이 들인 비용·시간 대비 효용성이 매우 낮다는 얘기다. KB·신한·하나·우리 등 4대 금융그룹은 은행·카드사를 끌어들여 이 상품들을 출시, 대대적인 마케팅 비용을 써가며 고객 잡기에 나섰다. 하지만 정작 소비자들은 "가가 가 아닌가" 하는 반응이다. 이름만 놓고 보면 가성비(價性比)가 꽝이다.  

 

은행 직원들은 '다름'을 구분하고 있을까. 서울 명동 한 은행 영업점에 방문해 창구에 비치된 트래블 체크카드 안내서를 보고 "이 카드 반응 어때요?"라고 묻자 "여름 휴가철을 앞두고 고객들이 점점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비슷한 상품이 많이 나와 헷갈릴 거 같은데"라고 덧붙이자 이 직원은 "우리 상품을 다른 은행의 트래블 카드인 줄 알고 발급받으려는 경우도 봤는데요. 이름이 다 비슷해서 직원인 우리도 사실 차이점을 잘 몰라요"라고 멋쩍게 말했다.    

 

네이밍(naming)의 기술. 은행 직원 답변을 듣자 머릿속에 스친 단어다. 이전에 은행권 관계자와 식사를 하다가 최근 신박한 상품 이름이 눈에 띈다고 했더니 그는 "과거에는 관련 부서가 해당 신사업 네이밍을 전담했는데 이제는 고객의 관심을 끌기 위해 사업 준비 단계에서 고객 공모를 거치기도 한다. 이름이 그만큼 중요해졌다는 뜻"이라고 했다. 그 중요한 이름이 왜 여행 특화 서비스에서 만큼은 튀는 것을 거부한 걸까. 

 

'내가 정답'이라던 '카드의정석', 명쾌하게 할인족을 겨냥한 'zgm(지금) 할인카드', 소띠해 '부자되소적금'에 이어 범띠해에 내놓은 '호락호락(虎樂)적금', 차라리 직관적이기라도 한 명태 살리기 적금인 '보고싶다! 명태야 적금'과 걸을수록 금리가 오르는 '흔들어예금'.         

 

호기 있게 들이대던 상품 명이 그립다. 연 순익 4조원가량을 벌어들이는 대형 은행들의 '무릎을 치는' 네이밍을 보고 싶다. 환전, 결제, 할인, 적립 등 여행 전용 혜택에 구분을 두기 어렵다면 더더욱 '이름'으로 승부를 봐야할 것 아닌가. 시인 김춘수는 시 '꽃'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며 명명 행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NH농협은행도 트래블 카드 상품을 연내 내놓을 것이라 한다. 농협은행에게 '오!' 감타사를 유발할만한 이름을 기대한다면 너무 큰 부담을 주는 것일까.   

 

"너무 '있어 보이게' 지으려다 보니 영단어+영단어 조합이라 결국 다 비슷해 보이는 거 아닐까요?" 한 은행 관계자의 생각이 도움이 될까 하여 붙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