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TV=김진태 기자]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대한항공의 넉넉한 곳간을 앞세워 자회사 한진인터내셔널에 자금을 지원한다. 자금 지원 규모는 9000억원을 웃도는 등 가히 천문학적이다. 2000% 넘는 부채비율을 개선하고 이를 통해 한진인터내셔놀의 기업가치를 높이겠다는 게 대한항공이 자금 지원에 나선 주된 이유다.
이와관련, 항공업계에선 엔데믹 시대를 맞아 국내외 여행수요가 빠르게 회복되는 만큼 이번 자금 지원 프로젝트가 한진인터내셔널의 적자폭 완화에 뚜렷한 효과를 발휘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반면 일각에선 한진인터내셔널의 경우 최근 5년간 적자 경영을 지속했다는 점을 내세워 지원 효과가 '찻잔속이 태풍'에 그칠 것이란 다소 어두운 관측도 있다.
22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21일 한진인터내셔널에 9343억원의 자금을 지원키로 했다. 지원방법은 유상증자다. 주주배정 방식으로 이뤄지는 이번 유상증자에는 대한항공이 100% 참여한다. 발행 신주는 4억주로 주당 2336원이다. 납입일은 오는 28일이다. 한진인터내셔널은 故 조양호 전 한진그룹 회장이 ‘개인적인 꿈의 정점’이라며 애정을 드러냈던 ‘미국 윌셔그랜드센터 호텔’ 운영 법인이다. 대한항공이 지분 100%를 보유했다.
이번 증자로 한진인터내셔널이 수혈받은 9000억원대의 자금은 대한항공에 고스란히 돌아간다. 그간 대한항공이 빌려준 대여금 6억600만 달러와 이자 1억800만 달러에 대한 만기가 내달 돌아오기 때문이다. 대한항공이 빌려준 돈을 투자해서 다시 돌려받는 셈이다. 이같은 조치는 차환이 아닌 상환을 하는 것은 한진인터내셔널의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다.
한진인터내셔널의 부채 비율은 2000%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유상증자로 돈을 갚게 되면 부채비율은 60%대로 낮아진다. 통상 부채비율이 200% 이하면 안정적, 100% 이하면 이상적으로 본다. 한진인터내셔널의 부채비율이 단숨에 이상적인 수준으로 급등하는 셈이다. 한진인터내셔널의 재무개선이 비약적으로 상승하게 됐지만 예상했던 만큼의 효과가 나올지는 미지수다. 기업가치를 평가하는 주요 조건 중 하나로 평가받는 수익적인 측면에서 한진인터내셔널은 마이너스 점수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한진인터내셔널은 지난 2017년 1조원이 넘는 돈을 들여 미국 윌셔그랜드센터 호텔을 LA의 랜드마크가 될 정도로 새롭게 탈바꿈했지만, 성적은 좋지 못했다. 2016년만 해도 33억원의 흑자를 기록했던 회사는 2017년 들어 770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이후 손실 폭은 매년 점차 커지더니 2021년엔 1354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이 기간 한진인터내셔널이 기록한 적자 규모만 5000억원을 웃돈다. 한진인터내셔널의 부채비율이 대폭 개선됐음에도 기업가치 높이기에 제한적일 것으로 전망하는 이유다.
미국 부동산 시장이 침체기에 들어서 있다는 점도 조 회장에겐 악재다. 지금 당장 수익이 없더라도 경기가 좋고 향후 실적 개선에 가능성이 있다면 매각을 노려볼 수 있겠지만 이마저도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한항공은 지난 2020년 한진인터내셔널 매각을 추진했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경기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진행 중이던 매각 협의가 불발로 끝났다. 이후 매각에서 리파이낸싱(자금조달)으로 방향을 선회했지만 매각의 끈을 놓은 것은 아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지금 당장은 부동산 시장이 좋지 않아 제값 받기 어려운 만큼 매각은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말을 하면서도 “매각 자체를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지금은 기업가치를 높이는 데 집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돈은 돈대로 들어가는 데다 매년 적자를 기록하는 한진인터내셔널이지만 호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적자 폭을 키우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웠던 코로나19의 기세가 지난해 하반기 이후 차츰 사그라들면서 여행수요가 증가하고 있어서다.
실제로 미국 교통안전청(TSA)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하루평균 공항보안검색대 통과 인원은 211만명으로 226만명이었던 2019년에 근접한 수준까지 수요가 회복됐다. 여기에 각 항공사들도 증편을 서두르고 있다. 불어나는 여객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줄였던 항공편을 늘리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증가하는 여행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각 항공사들도 인력난에 시달리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같은 추세가 계속 될 경우 한진인터내셔널의 적자 폭이 개선되겠지만 단기간 흑자로 돌아서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