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진이 침대에 모로 누워 휴대폰 화면을 들여다보기 시작한 지도 벌써 한참이 지났다. 대학교 입학 기념으로 부모님께 선물 받은 새 스마트폰. 아람 외에는 별 친해진 동기들도 없는 탓에 스마트폰은 고3 수험생활을 같이 보낸 고등학교 친구들의 연락 외에는 크게 써먹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백건우 선배님 - 생과대 식영과] ‘너, 나한테 과외 받을래?’‘과외요?’‘다이어트 과외. 다이어트 고민으로 울고 있었던 거잖아. 옆집 오빠가 해결해 주겠다, 이거지~! 너, 행운인줄 알아. 내가 요새 졸업 논문도 끝내고 엄청 한가하거든.’ 미진은 침대 위에 모로 누워있던 몸을 일으켜 이미 몇 번이나 들여다 본 메신저 화면을 띄웠다. 건우
“최 계장! 뭐 많이 남았어?” 컴퓨터를 종료하던 영훈에게 김 계장이 와서 말을 걸었다. “아니, 이제 컴퓨터 끄느라고.”“자, 이거 지난 번에 말한 거.” 김 계장이 영훈에게 붉은 액체가 그득 담긴 작은 물병을 건넸다. “이게 양파와인이야?”“응. 별거 없어, 와인 한 병 사서 양파 썰어 넣어. 2~3일 정도 햇볕 피해서 실온에 내버려 두면 돼.”“그 후엔, 냉장고?”“응. 양파는 걸러내고 와인만 따로 담아서. 간단하지?” 영훈은 물병 뚜껑을 열고 가만히 냄새를 맡아 보았다. 알싸한 양파 향과 달큼한 와인 향이 어우러진 새큼한 냄새는 당장이라도 한 모금 마셔보고 싶게 했다. “이게 그렇게 좋단 말이지?” 사무실을 나오면서 영
대한민국 서울 '쇼핑 1번지' 명동.오랜만에 찾은 백화점 실내는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온갖 신상품과 화려한 옷들이 마네킹에 걸려 뽐내고 있었다. “미진아, 이거 어때?”아람이 집어 든 옷은 밑단이 짧고 짝 달라 붙는 검정 가죽 재킷. “어머~, 손님. 지금 입으신 스키니 팬츠에 딱 이네요!““…….” 미진이 대답을 하기도 전에 점원은 미진을 제치고 아람 옆에 서서 가죽 재킷 입는 것을 도와줬다. “지금 입으신 거~ 아무나 못 입으시거든요. 보시다시피 핏이 어깨랑 몸통이랑 팔뚝이 꼭 끼는데, 아무래도 가죽이다 보니 막 늘어나진 않아요.”“음……. 네, 좀, 끼긴 하는것 같은데…….”“손님, 잠시만. 제가 친구 분 옷 입는 거 좀
“오늘 강의는 이걸로 끝. 다음 주까지 리포트 제출 잊지 말고!” “감사합니다~!” 오후 강의는 생각보다 일찍 끝났다. ‘교수님의 외부일정’ 이라는 것은 딱히 궁금하지 않다. 그보다는 평소보다 두 시간이나 빨리 끝났다는 것이 중요했다. 미진은 가방을 꾸렸다. 집에 가서 저녁 먹기 전에 감자칩이나 먹으며 TV를 볼 셈이다. “미진아, 오늘 약속 있어?” 옆에서 누군가 얼굴을 들이밀며 말을 걸었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사귄 여자동기, 아람이다. 얼굴은 비록 크게 미인형이 아니었지만 큰 키에 늘씬한 그녀는 옷도 센스있게 잘 입어 아직은 서먹한 동기들 가운데서도 모델 같다는 평판을 받고 있었다. 미진이 가본 맛집들을 아람
학교 가는 길. 올해 풋풋한 스무 살, 대학 새내기, 최미진. 또래 여학생들은 부지런히 얼굴에 분을 바르고 짧은 치마를 입고 비틀거릴지언정 높은 구두를 신지만 그런 것들은 미진에게는 관심 밖의 일이다. 거짓말하지 말라며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있지만, 아직까지 첫사랑 때문에 가슴앓이를 겪는 그 흔한 경험도 없다. 소위 외모를 꾸밀만한 이유랄 것이 지금 미진에게는 없다. 고3을 치러내기 전보다 바지 사이즈는 3치수가 더 늘었고 상체 사이즈 역시 2계단 올라갔지만, 그런 것으로는 저 빨간색 간판의 유혹을 이겨 내기에 턱없이 역부족이다. ‘딸랑.’“어서 오세요~.”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랴. 오늘도 기어이 얼굴 도장을 찍는 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