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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클로즈업]78회 생일 하루 앞둔 '삼성맨 1호' 이건희

1942년생 이건희 회장 2014년 5월 심근경색으로 입원
삼성전자를 대한민국 대표 글로벌 전자회사로 발전시킨 주역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신경영' 선언 조직문화 선진화 출발점

[FETV=송은정 기자]'삼성맨 1호'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9일 병상에서 78번째 생일을 맞는다. 이 회장은 지난 2014년 5월 급성 심근경색으로 병원에 입원한 뒤 7년째 병상에 누워있다.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VIP 병실에 입원한 이 회장은 인공호흡기나 특수 의료장비 없이 자가 호흡을 하는 등 건강상태가 입원했을 때보다 특별히 악화되지 않고 이전과 같은 상태를 유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 생일엔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등 가족들이 78살 생일 축하와 신년인사를 겸해 이 회장이 입원한 병원을 찾을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그룹은 이 회장의 생일을 기념해 사내매체 등을 통해 쾌유 기원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했지만 2018년부터는 별도의 행사를 하지 않고 있다. 올해도 회사 차원의 행사 없이 조용히 지나갈 가능성이 높다.

 

◆ 탁월한 경영능력 · 승부사 기질로 '삼성' 만들어낸 경영인

 

이건희는 병석에 있지만 여전히 국내 대표 기업인 삼성전자의 회장이다. 그는 탁월한 경영능력과 승부사 기질로 오늘의 '삼성'을 만들어낸 한국을 대표하는 경영인이다. 하지만 지난 2014년 급성심근경색으로 병상에 눕게 되면서 사실상 경영 2선으로 물러났다. 하지만 '이건희' 이름 석자는 여전히 삼성그룹을 상징하는 고유명사 1호다.

 

이 회장은 1942년 1월9일 경상남도 의령에서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법무부장관과 내무부장관을 역임한 홍진기 전 중앙일보 회장의 장녀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리움 관장과 1967년 결혼했다. 이건희와 홍 전 관장은 슬하에 장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장녀 이부진 호텔신라 대표이사 사장, 이서현 삼성물산 패션부문 사장을 두고 있다. 그러나 이 회장의 귀여움을 독차지한 삼녀 이윤형씨는 미국 유학중 안타깝게 사망했다.

 

이 회장은 일본 와세다대학교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미국 조지워싱턴대 경영대학원에서 MBA 과정을 마쳤다. 중앙일보 산하 동양방송 이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뒤 삼성 비서실과 삼성물산, 삼성그룹 부회장 등을 거치며 경영수업을 받았다. 이 회장은 이병철 창업주의 사망 뒤 후계자로 삼성그룹 회장에 올랐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1993년 이건희의 '프랑크 푸르트 신경영' 선언은 삼성그룹의 경영시스템 및 조직문화가 선진화하는 출발점이 됐다.

 

이 회장의 경영은 신속하고 과감했다. 그리고 철저했다. 그는 우선 반도체 등 핵심사업에 과감한 투자를 벌여 삼성전자를 세계에서 손꼽히는 기업으로 키워냈다. 삼성전자를 제외한 나머지 삼성그 계열사들도 모두 각 사업분야에서 대표적 기업으로 자리잡았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법. 이 회장도 예외가 아니다. 이 회장은 불법적인 경영권 승계와 정경유착, 비자금 조성 등의 논란에 휩싸이며 기소됐지만 집행유예를 선고받았지만, 실형을 면했다. 이 회장은 이를 계기로 한때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경영에 복귀한 바 있다.

 

이 회장은 정재계를 통틀어 한때 한국사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꼽혔다. 그는 매년 국내 부자 1위, 세계 부자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는 대한민국의 대표 부자다. 그가 보유한 자산만 17조원을 웃돈다. 그는 올 한해동안 4조원 상당의 재산을 불렸다. 이 회장은 한국경제 성장에 가장 큰 공을 세운 경영인이지만 재벌중심의 경제구조를 강화했다는 또 다른 평가도 받는다.

 

◆ 적자 감수하며 '공격적 투자'…미래 성장동력 자리매김

 

이 회장은 특유의 승부사 기질을 갖고 있다. 그는 이같은 남다른 기질을 앞세워 삼성전자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전자기업으로 발전시켰다. 삼성전자의 주력사업으로 자리잡은 반도체와 휴대폰 등은 대규모 연구개발과 공장증설에 선제적 투자가 앞으로 10년 이상의 경쟁력을 결정할 수도 있는 분야로 꼽힌다.

 

이 회장이 반도체와 휴대폰사업을 주력으로 키우기 위해 초반에 성과를 보기 어려운 상황에도 과감한 투자를 벌여 삼성전자가 현재 반도체와 스마트폰 세계 1위 기업으로 자리잡게 됐다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와 바이오의약품 등 삼성그룹 계열사들이 뛰어든 신사업도 이건희가 진출 초기부터 대규모 적자를 감수하며 공격적 투자를 이어왔다.

 

이런 사업들은 이제 강력한 미래 성장동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건희 회장은 “항상 일등이 되어야 한다”는 ‘제일주의’를 강조하는데 이런 집념과 승부욕이 삼성그룹을 국내 재계 부동의 1위로 만드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타고난 경영능력과 추진력, 사업감각도 경영에 뛰어든 초기부터 인정받았다. 이건희는 이병철 창업주의 셋째아들로 형인 이맹희 전 CJ그룹 명예회장과 이창희 전 새한그룹 회장을 제치고 삼성그룹 경영 후계자에 올랐다. 이를 놓고 다양한 관측이 나오지만 이병철 창업주는 이건희의 경영능력이 뛰어나 그룹을 물려주기로 결정했다는 뜻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건희 만의 '삼성경영학'…합리주의+경쟁주의 접목

1987년 이건희가 삼성그룹 제2대 회장으로 오르자마자 소비에트연방의 붕괴 조짐과 중국의 경제개방 등 국제적으로 큰 변화가 이어졌다. 이건희는 취임 직후부터 이런 대격변기에 대응해 그동안 내수시장에 집중됐던 삼성그룹의 사업을 글로벌화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이건희는 이병철 창업주가 제시했던 제3대 경영이념인 ‘자율경영’과 ‘기술중시’, ‘인간존중’을 계승하면서 더 발전시킨 ‘삼성경영학’을 앞세웠다. 동양의 유교윤리에 기반했던 삼성경영학에 서구적 합리주의와 경쟁주의를 접목한 것이다.

 

또한 기업이 언제나 위기에 미리 대비해야 한다는 ‘위기경영’을 앞세워 시장변화에 꾸준히 대응할 수 있는 체질을 갖춰내는 데 주력했다. 이 결과로 이건희는 1997년 외환위기와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모두 성공적으로 극복하며 삼성그룹의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능력을 보였다.

 

◆"이건희, 재벌중심 기업구조 일조 했다"

하지만 이건희는 한국사회에 장기간 부정적 영향을 끼친 재벌중심의 기업구조가 자리잡는 데도 일조했다는 비난을 샀다.

 

삼성그룹은 지주사체제를 갖추지 않은 가운데에서도 삼성 비서실과 전략기획실, 미래전략실로 계속 이름을 바꿔온 비공식 조직을 통해 오너일가가 모든 계열사에 절대적 영향력을 갖출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의 경우 이건희를 포함한 오너일가의 지분율이 높지 않은데도 미래전략실의 지배 아래 놓여 투자와 사업계획, 인사 등이 좌우됐다. 2017년 2월 '박근혜 게이트'에 휘말려 미래전략실이 해체될 때까지 이런 구조가 계속 자리잡았다.

 

이건희는 세금포탈과 금품수수, 불법 경영승계를 위한 편법 사용 등 다양한 의혹에 휘말리며 일부 혐의로는 검찰수사와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재벌기업의 단점으로 꼽히는 불투명한 지배구조와 정경유착 등 지금까지 논란이 되고 있는 사안들이 모두 이건희 시대에 일어났다.

 

◆외로운 유년기 탓에 '영화광' , '자동차광'   
이건희는 초등학교 때 부모와 떨어져 형과 일본 유학길에 올랐는데 민족차별과 문화차이 등으로 외로운 유년기를 보내며 영화에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10여년간 1200편 정도의 영화를 볼 정도로 틈만 나면 영화관으로 향했다.

 

이를 통해 영어와 일본어 등을 공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유학 시절에는 자동차에 빠져 1년 반 동안 차를 여섯 번이나 바꾸고 직접 자동차를 분해했다. 내부 구조도 공부할 만큼 깊은 탐구심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도 수많은 희귀 외제차를 개인 소장용으로 두고 있다.

 

삼성그룹이 실패로 마감하고 말았던 자동차사업에 뛰어든 것도 이건희의 남다른 자동차 사랑 때문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스포츠에도 관심이 많아 고등학생 때 레슬링부 선수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건희 삼성 회장 프로필

▲ 1966년 중앙일보 산하 동양방송 이사로 입사  ▲ 1978년 삼성물산 부회장을  ▲ 1979년 삼성그룹 부회장  ▲ 1987년 이병철 창업주 사망 후 삼성그룹 회장  ▲ 1998년 삼성전자 대표이사 회장 취임  ▲ 2008년 4월 삼성 비자금 사건과 조세포탈 혐의로 불구속 기소  ▲2010년 3월 삼성전자 회장 복귀  ▲ 2017년 말~ 현재 회장직 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