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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물류


"땅콩회항에서 경영권 상실"…‘수송보국’ 꿈 남긴채 하늘로 돌아간 조양호회장

45년 민간 항공 '산증인'...말년 '가족 갑질' 파문
조 회장 배임과 횡령 혐의로 재판…지난달 대한항공 주총서 대표이사 연임실
8일 새벽 미국 별장에서 별세…가족들 임종 지켜

 

[FETV=김윤섭 기자] 한진일가에 비극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8일 별세했다. 지난달 27일 대한항공 주주총회에서 20년 만에 경영권을 박탈당한지 약 10일만이다 .

 

조 회장은 여론의 역풍과 국민연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사내이사 연임을 고수하며 '책임경영'과 '아름다운 퇴진'을 희망했지만 끝내 이루지 못한 '꿈'으로 남게됐다.

 

앞서 조양호 회장 부인과 세 자녀는 2015년 '땅콩 회항' 사건을 비롯해 '물컵 갑질', '대학 부정 편입학', '폭행 및 폭언' 등 각종 사건에 연루되면서 대한항공 오너가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들끓었다.

 

땅콩회항부터 조양호 회장의 경영권 박탈, 조 회장의 죽음까지 한진그룹 ‘조양호 왕조’의 민낯을 짚어본다.

 

 

▲조현아 전 부사장의 ‘땅콩회항’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의 장녀인 조현아 전 부사장이 2014년 12월 5일 뉴욕발 대한항공 1등석에서 마카다미아를 봉지째 가져다준 승무원의 서비스를 문제삼으며 난동을 부린 데 이어, 이륙을 위해 활주로로 이동 중이던 항공기를 되돌려 수석 승무원인 사무장을 하기(下機)시키면서 국내외적으로 큰 논란을 일으킨 사건이다.

 

조 전 부사장의 이 같은 행동으로 당시 같은 비행기에 탑승했던 250여 명의 승객들은 출발이 20분가량 연착되는 불편을 겪었다. 조용히 무마되는 것으로 보였던 이 사건은 12월 8일 언론을 통해 공개되면서 땅콩리턴, 재벌가 갑질 논란을 촉발시켰다. 특히 게이트를 떠난 항공기가 다시 게이트로 돌아오는 램프리턴에 대한 항공법 저촉 여부 등으로 국제적으로도 큰 논란이 됐다.

 

그러나 이러한 논란에 대한항공은 조 부사장을 옹호하는 것은 물론 책임을 승무원에게 떠넘기는 사과문을 발표해 논란을 더욱 가열시켰다. 이에 조 전 부사장은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를 결정했다. 주요 보직은 모두 유지하는 것으로 드러나 또 다시 논란이 됐고, 결국 12월 10일 대한항공 부사장직에서도 물러났다. 그리고 조양호 회장과 대국민 사과를 발표했지만 실제로는 증거 인멸 시도 등이 알려지면서 사태는 계속 확산됐다.

 

▲조양호 회장 부인 이명희의 ‘갑질 폭행’

약속 시각에 늦게 되자 이명희는 운전기사의 얼굴에 침을 뱉은 뒤 "우측에 차 세워"라며 욕설과 함께 고성을 질렀다.

 

빨리 가자는 말을 듣지 않은 운전기사에게는 물이 담긴 플라스틱 컵을 머리 쪽으로 집어 던졌다. 운전기사가 급브레이크를 밟았을 때도 "누굴 죽이려고"라며 욕설을 하고 운전석 시트를 발로 찼다. 검찰의 공소장에 드러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부인 이명희 씨의 이른바 '갑질 폭행' 사례들이다.

 

이씨의 폭언·폭행은 주로 운전기사나 자택에서 일하는 직원들을 향했다. 이씨는 식재료(생강)를 충분히 사놓지 않았다는 이유로 직원을 문지방에 무릎 꿇게 한 뒤 책을 집어 던져 왼쪽 눈 부위를 맞히고, 걸레질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플라스틱 삼각자를 던져 턱에 맞힌 것으로 조사됐다. 40∼50cm 길이의 밀대를 이마에 집어 던지기도 했다. 이런 폭행 때는 항상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이 뒤따랐다.

 

이씨는 2011년 11월부터 지난해 4월까지 운전기사 등 직원 9명에게 욕설을 하고 다치게 한 혐의를 받는다. 필리핀 여성을 대한항공 직원으로 속여 입국시킨 뒤 가사도우미로 불법 고용한 혐의(출입국관리법 위반)로도 재판에 넘겨진 상태다.

 

작년 12월에는 인천본부세관이 해외에서 구매한 명품 등을 밀수입한 혐의(관세법 위반)로 이씨와 두 딸인 조 전 전무,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을 검찰에 송치한 바 있다.

 

▲조현민 ‘물벼락 갑질’

작년 4월 조양호 회장의 차녀인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가 광고대행사 직원에게 음료수 병을 던지고 얼굴에 물을 뿌리는 ‘갑질’을 해 논란이 된 사건이다.

 

당시 익명 게시판에 조 전무가 대한항공의 광고대행을 맡고 있는 회사와의 회의중 광고팀장에게 음료수병을 던지고 얼굴에 물을 뿌렸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다. 회의 중 해당 팀장이 조 전무의 질문에 제대로 답변을 못하자 유리로 된 음료수병을 던졌고 이후 분이 풀리지 않아 물을 뿌렸다는 내용이었다. 이 글은 논란이 되제 바로 삭제됐다.

 

한진그룹 측은 이에 대해 "광고대행사와 회의 중 언성이 높아졌고 물이 든 컵을 회의실 바닥으로 던지면서 물이 튄 것은 사실이나, 직원 얼굴을 향해 뿌렸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고 해명했다. 한진그룹 측은 또 "조 전무는 회의에 참석한 광고대행사 직원들에게 개별적으로 사과했다. 광고대행사 사장이 사과 전화를 했다는 내용도 사실과 다르다"고 덧붙였다.

 

대한항공은 논란이 지속되자 조 전무를 대기발령 조치하고 경찰 조사 결과가 나오는 대로, 회사 차원에서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으나 조 전무가 2010~2016년 불법으로 진에어 등기이사 지내 항공사업법 등을 위반한 사실이 언론 보도 통해 알려지면서 역풍을 맞은 바 있다.

 

그러나 수사를 맡았던 검찰이 조 전무를 무혐의 처분하면서 사회적 공분을 불러온 이 사건은 일단락됐다. 서울남부지검은 조 전 전무에 대해 특수폭행·업무방해 혐의는 '혐의없음' 처분을 하고, 폭행 혐의는 '공소권 없음' 처분을 내렸다.

 

당시 검찰은 특수폭행 혐의에 대해서는 유리컵을 사람이 없는 방향으로 던진 것은 법리상 사람의 신체에 대한 유형력 행사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폭행 혐의와 관련해선 피해자 2명이 모두 처벌을 원하지 않아 공소권이 없다고 봤다. 폭행죄는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을 경우 처벌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다.

 

또 검찰은 업무방해 혐의에 대해서도 조 전 전무가 해당 광고의 총괄 책임자로 업무적 판단에 따라 시사회를 중단시킨 것으로 볼 수 있어 타인의 업무를 방해한 것으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물벼락 갑질은 무혐의로 결론 났지만, 한진그룹 총수 일가의 갑질·비리 의혹을 수면위로 드러내는 시발점 역할을 했다. 조 전 전무에 대한 사회적 비판이 쏟아지는 가운데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과 조 회장 아내 이명희씨의 비리·갑질 의혹이 제기됐다.

 

‘땅공회항’과 ‘물벼락 갑질’로 시작과 조양호 일가의 릴레이 갑질은 20년간 공고했던 '조양호 왕조'의 몰락을 가져왔다. 끊이지 않은 ‘갑질 논란’으로 검찰 및 경찰 포토라인에 줄줄이 섰고 실적 부진까지 겹쳐 신뢰를 잃으면서 소액주주가 등을 돌린 것이다.

 

 

▲‘수송보국의 꿈’ 남긴채…하늘로 돌아간 조양호 회장

 

대한항공은 조 회장이 이날 새벽 0시 16분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한 병원에서 폐질환으로 별세했다고 밝혔다.

 

운구 및 장례 일정과 절차는 추후 결정되는 대로 알리겠다고 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조 회장이 폐질환이 있어 미국에서 치료를 받던 중 대한항공 주총 결과 이후 사내이사직 박탈에 대한 충격과 스트레스 등으로 병세가 급격히 악화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조 회장 부인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과 장남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 장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차녀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 등 가족이 조 회장의 임종을 지킨 것으로 전해졌다.

 

조 회장은 지난해 12월부터 요양 목적으로 LA에 머물러왔다. 부인과 차녀는 미국에서 병간호 중이었고 조원태 사장과 조현아 전 부사장은 주말에 급히 연락을 받고 미국으로 출국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현지에서 조 회장을 한국으로 모셔오기 위한 절차를 밟고 있다"고 말했다.

조 회장의 운구는 최소 4일에서 1주일가량이 걸릴 것으로 알려졌다.

 

조 회장은 한진그룹 창업주인 고 조중훈 회장의 장남으로 1949년 인천에서 태어났다. 인하대 공업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남가주대 경영대학원에서 석사, 인하대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조 회장은 1974년 대한항공에 입사해 1984년 정석기업 사장, 1989년 한진정보통신 사장을 지냈다.

 

1992년 대한항공 사장에 오른 뒤 1996년 한진그룹 부회장, 1999년 대한항공 회장, 2003년 한진그룹 회장 자리에 오르며 선친에 이어 그룹 경영을 주도했다.

 

1996년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집행위원회 위원을 거쳐 2014년부터 IATA 전략정책위원회 위원을 맡아 국제항공업계에서 한국의 국적항공사 이해를 대변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을 맡아 재계에서도 꾸준히 목소리를 냈고, 한일경제협회 부회장, 한·불 최고경영자 클럽 회장, 한·사우디 경제협력위원회 위원장 등을 맡아 민간 외교에도 공헌했다.

 

대한탁구협회 회장, 대한체육회 부회장, 아시아탁구연합(ATTU) 부회장 이사 등 스포츠 지원 활동도 활발히 펼쳤다.

 

특히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올림픽 유치를 성사시켰다.

 

그러나 수십년간 국내 항공산업의 앞자리에 서 있던 딸과 부인 등의 ‘땅콩회항’, ‘물벼락 갑질’, ‘폭행 갑질’을 비롯한 연이은 악재로 국민적 지탄을 받다가 급기야 지난달 주주들에 의해 대한항공 대표이사직에서 불명예 퇴진을 당했다.

 

평소 ‘항공업계 리더’라는 수식와와는 달리 소탈한 경영스타일로 알려졌던 조회장은 자신의 꿈을 완성하지 못하고 하늘로 돌아갔다. 항공업계의 산증인이지만 갑질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조 회장의 꿈이 조원태 사장의 새로운 하늘에서 완성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