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ETV=김윤섭 기자] 비등기이사로 경영권을 유지하려던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사망하고,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은 아시아나항공 감사보고서 `한정`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면서 항공업계가 오너 3세들의 경영능력이 본격적인 시험대에 올랐다.
급작스러운 총수 부재를 맞이한 대한항공은 경영권 승계부터 쉽지 않고 아시아나항공은 새 리스회계기준 도입으로 부채비율이 800%대로 치솟을 예정이라 일부 자산 매각을 염두하는 것으로 알려지는 등 앞길이 순탄치 만은 않은 상황이다. 두 회사 모두 비상경영체제에 들어가 곳곳에 자리한 암초를 벗어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11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한진그룹은 미국에 있는 고(故) 조양호 회장의 운구 및 장례절차와 더불어 승계 준비에 속도를 낼 방침이다.
문제는 한진그룹이 그동안 보여준 강력한 경영 리더십과 달리 경영권 승계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단 점이다. 한진그룹 총수일가의 지배구조가 취약해 지주회사인 한진칼 등을 두고 지분 쟁탈전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은데, 이 경우 주력 계열사인 대한항공 경영권이 흔들릴 수 있다.
한진그룹은 지주회사인 한진칼, 대한항공과 한진 등의 자회사, 손자회사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를 갖고 있다. 한진칼 지분은 조 회장 17.84%를 비롯해 조 사장 등 총수 일가가 총 28.95%를 갖고 있다.
앞서 한진그룹은 고(故) 조중훈 창업주 타계 이후 큰 아들인 조 회장을 비롯해 자녀들이 경영권 분쟁을 벌인 바 있다. 현재도 조 회장의 3남매 한진칼 지분 비율이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2.34%),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2.31%),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2.30%) 등으로 거의 유사해 지분 싸움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
다만 조 회장의 장남인 조 사장이 경영권을 승계받을 것이란 예측이 우세하다. 조 사장은 3남매 중 유일하게 회사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대규모 상속세 문제도 부담으로 작용한다. 상속세 납부를 위해 주식을 되팔 경우 지분이 줄어들어 안정적인 경영권 유지가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유족들이 상속세를 주식으로 납부할 경우 상속세율 50%에 20% 할증률을 적용받기 때문에 오너가 지분은 19.09% 이하로 떨어질 수 있다. 배당 규모를 늘리는 방법도 있지만 지난해 조 회장의 배당금은 12억원 수준으로 2000억원에 달하는 상속세를 감당하기 어렵다.
경영권 분쟁 가능성도있다. 한진칼 2대 주주(13.47%)로 경영 정상화를 요구하며 우호 지분을 늘리고 있는 행동주의 사모펀드 KCGI가 내년 한진칼 사내이사 만기를 앞둔 조 사장을 흔들고 있고, 3대 주주(7.34%)인 국민연금도 앞서 이사 자격 강화를 요구하는 등 총수일가에 우호적이진 않은 상황이다.
특히 KCGI는 장내 한진칼 주식을 추가 매수하고 있어 경영권 분쟁이 곧 `돈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조 회장 타계로 경영권 분쟁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전일 한진칼 주식은 전 거래일 대비 20.63% 급등했다.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한 한진그룹은 "그룹 사장단 회의에서 주요 현안에 대한 의사 결정을 진행할 것"이라며 "항공 안전과 회사 운영에 차질이 없도록 만전을 기하겠다"고 말했다.
아시아나항공 상황 역시 녹록지 않다. 박 회장의 퇴진으로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외부인사를 데려와 전문경영인체제에 들어가겠다고 밝혔지만, 재계는 박세창 아시아나IDT 사장의 역할에 주목하고 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2대주주인 만큼 실권은 사실상 3세인 박 사장에게 넘어갔단 분석도 나온다. 박 사장은 금호아시아나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금호고속의 지분 21%를 보유하고 있다. 박 회장 지분을 더하면 52%를 넘어 강력한 지배구조 체제를 갖고 있다.
아시아나IDT는 금호아시아나그룹의 IT계열사로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등의 연구개발을 맡는다. 대부분의 이익이 금호아시아나그룹 내부거래를 통해 발생한다. 결국 박 사장의 경영능력은 계열사보단 그룹 향방을 통해 평가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주력 계열사인 아시아나항공은 새 리스회계기준 도입으로 운용리스 내용이 재무제표에서 모두 자산과 부채로 반영돼 부채비율이 800%대로 치솟아 부담이 되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의 운용리스 규모는 2조9481억원으로 부채비율은 기존 649%에서 852%로 급등하게 됐다.
삼일회계법인으로부터 지난해 감사보고서 의견 `한정`을 받은 여파로 자본시장을 통한 자금 조달이 쉽지 않게 된 만큼 자산 매각 등을 통한 유동성 확보가 쉽지 않은 경우 경영 시험대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이런 가운데 금호아시아나그룹은 10일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에게 박삼구 전 회장일가의 금호고속 지분을 전량 채권단에 담보로 맡기고, 아시아나항공의 자회사 등을 포함한 자산을 매각하는 자구책을 제출했다고 밝혔다. 이를 대가로 채권단에는 5000억원에 유동성 지원을 요청했다.
현재 금호아시아나는 금호타이어 지원을 조건으로 박 전 회장과 아들 박세창 아시아나IDT 사장의 금호고속 지분 42.7%도 담보로 맡긴 상태다. 금호아시아나는 채권단이 이 담보를 해제할 경우 박 전 회장과 박 사장의 금호고속 지분을 다시 담보로 맡기겠다고 했다.
금호아시아나의 지배구조가 금호고속→금호산업→아시아나항공으로 이어져 있는 만큼, 그룹 전체의 운명을 걸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산은 관계자는 "아직 금호타이어 관련 대출이 남아있는 만큼, 현재로선 부인과 딸의 지분만 신규 담보로 제공하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금호아시아나는 아시아나항공 수익성 개선을 위해 보유 항공기를 팔고 비수익 노선을 정리하는 한편, 인력 생산성도 높이겠다고 다짐했다
금호아시아나가 올해 갚아야 할 채무 1조2천억원 가운데 4천억원은 채권단의 대출금이다. 이를 상환 유예·연장하는 내용으로 재무구조개선 약정(MOU)을 다시 맺자고 했다. 채권단 대출금은 아시아나항공 자회사 등을 비롯한 그룹 자산을 매각해 갚아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같은 자구계획을 이행하는 기한은 3년으로 제시했다. 3년 내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채권단이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아시아나항공을 팔아도 좋다고 했다. 금호아시아나는 "이 경우 금호산업 등 아시아나항공 대주주는 채권단의 매각 절차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금호산업은 산은이 (아시아나항공) M&A를 진행할 경우 보유지분 및 상표권 사용 등과 관련해 매각 절차에 하자가 없도록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금융권에선 금호아시아나의 자구계획이 시장의 기대에 다소 못 미친다는 평가가 나온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결국 시장의 평가가 중요할 것"이라며 "미흡하다는 평가가 나올 경우 금호아시아나 측이 적극적으로 보완해나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갑작스런 오너의 부재로 흔들리는 리더십을 잡아야 하는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과 그룹의 모든 것을 걸고 아시아나항공을 살려야하는 박세창 아시아나IDT 사장이 어떤 묘수를 찾아낼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