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ETV=이가람 기자] 국내 최대 기관투자자인 국민연금이 보유 중인 대형증권사의 지분을 줄이고 있다.
증권가를 덮친 금융사고와 박스권을 횡보하는 증권시장 분위기, 일평균거래대금 및 투자자예탁금 축소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15일 금융감독원 등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지난 1월 26일 NH투자증권의 주식 294만2007주를 장내 매도했다. 당시 종가(1만1500원)를 적용하면 338억3308만원에 달한다. 이에 따라 국민연금의 NH투자증권 보유비율은 지난해 7월 9.92%에서 현재 8.87%로 1.05%포인트(p) 낮아졌다. 지난해 3월 지분율이 10.25%였던 것을 감안하면 앞자리를 꾸준히 갈아치우고 있는 셈이다.
한국투자증권의 모회사인 한국금융지주의 주식은 한 달 만에 5만8331주를 정리했다. 거래 당일인 지난 3월 31일 종가(8만7300원)를 대입해 계산하면 50억9230만원어치다. 지분율은 지난 2월 12.28%에서 지난 3월 말 12.18%로 내려갔다.
같은 날 삼성증권과 키움증권의 지분도 조정했다. 국민연금은 종가(3만9450원) 기준 141억9805만원에 해당하는 삼성증권의 주식 35만9900주를 던졌다. 지분율은 한 분기 만에 13.42%에서 13.02%가 됐다. 같은 기간 키움증권의 주식은 4만8418주를 사들였다. 종가(12만6000원)를 반영하면 61억원이 넘는 금액이다. 하지만 전환사채(CB)를 주식으로 교환하면서 발행주식총수가 변경되고, 다른 주주들이 적극적인 매수에 나서면서 국민연금의 지분율은 기존 11.23%에서 현재 10.54%로 0.69%p 감소했다.
작년 하반기에는 미래에셋증권과 메리츠증권의 주식을 매각한 바 있다. 각각 761만3018주와 202만7070주를 던지면서 지분율을 낮췄다. 그 결과 미래에셋증권의 지분율이 8.9%에서 7.9%로 1%p, 메리츠증권의 지분율이 8.94%에서 7.9%로 1.04%p 축소됐다.
재미있는 점은 이들 증권사가 지난해 하나같이 호실적을 거뒀다는 사실이다. 당기순이익을 살펴보면 미래에셋증권이 8343억원을 벌어들였다. 증권업계 최초로 영업이익 '1조원 클럽' 가입에 성공하기도 했다. 키움증권도 순익이 두 배 가까이 신장했다. 삼성증권(29%), NH투자증권(21.1%), 한국투자증권(3.4%), 메리츠증권(1.9%) 역시 순익이 늘었다. 올 1분기에도 좋은 성적표를 받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에프앤가이드는 코스피 시장에 상장된 증권사들의 올 1분기 당기순이익 추정치를 9629억원으로 집계했다. 전년 동기 대비 262.31% 증가한 수치로 시장의 컨센서스를 훌쩍 웃돈다.
국민연금이 대형증권사의 지분을 줄이는 또 다른 원인으로 목표 비중 유지 규칙에 따른 국내 주식 투자 비중이 거론된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말 21.2%까지 치솟은 국내 주식 비중을 허용 한도인 18.8%에 맞추기 위해 지난해 12월 24일부터 석 달 가까이 순매도를 선택했다. 지난 9일 국내 주식 허용 범위를 확대했지만 국민연금이 보유 중인 국내 주식은 기금 전체 자산의 약 20.5%로 알려졌다. 여전히 팔아야 하는 물량이 존재하는 상황이다.
설태현 DB금융투자 연구원은 “전략적 자산배분(SAA) 상단인 19.8%를 맞추려면 지금부터 0.7%p만큼의 감축이 필요하다”며 “국민연금 투자자산이 856조5000억원이라고 가정했을 때 앞으로 6조원 안팎의 매도세가 나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달아 터진 금융사고도 증권주의 투자 매력을 떨어뜨리는 데에 한몫을 했다는 지적이다. NH투자증권은 5000억원대 환매 중단 사태를 불러일으킨 옵티머스자산운용 사모펀드를 가장 많이 판매해 금융당국으로부터 중징계 사전 통보를 받았다. 한국투자증권은 옵티머스·팝펀딩·디스커버리 등 각종 펀드 사고에 휩쓸렸다. 미래에셋증권은 1조6000억원대 피해를 낸 라임자산운용 사모펀드를 91억원가량 팔았다. 그리고 부실을 사전 고지하지 않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신한금융투자와 법정 공방을 벌이게 됐다. 메리츠증권은 해외 부동산 손실과 연관돼 있다. 정부가 직접 운영하는 연금기관으로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요소를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그동안 대표 지수 급등으로 쌓인 피로가 조정장으로 이어지면서 투자에 대한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는 해석에도 힘이 실린다. 일평균거래대금은 1월 42조1000억원→2월 32조4000억원→3월 26조2000억원으로 꾸준히 떨어졌다. 주식 매매를 위해 증권계좌에 남겨 놓은 돈을 의미하는 투자자예탁금도 지난 1월 12일 74조4559억원까지 치솟았지만 3월 11일 57조6372억원으로 연중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후 60조원대에서 정체돼 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연초 예탁금이 증가한 까닭은 정부의 신용대출 규제가 강화되기 전이라 가수요가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은 일시적 호재”라며 “증권사들은 거래대금 증가와 증시 상승 및 금리 하락이 지속돼야 성장이 가능한데 금리 인하가 발생할 가능성이 제한적이라 아무래도 이익 둔화를 감안해 매각을 결정한 것 같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