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두달-정유] 코로나 직격탄에 정유업계 휘청 "공장 돌려봐야 손해"

등록 2020.03.27 11:00:00 수정 2020.03.27 11:01:15

정제마진 추락… 국내 정유4사 가동률 82%로 감산 추세
저유가에 美 셰일업체도 직격탄… 기업가치 폭락도

 

[FETV=김창수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석유 소비가 줄어든 상황에서 최근 국제 유가까지 폭락하면서 글로벌 정유업계가 휘청대고 있다. 국내 석유제품 수요는 지난 1월에 이어 지난달에도 전년 동월 대비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정유사들은 잇따라 감산(減産)에 나서고 있다. 특히 미국 셰일 오일(지상 암반층에서 뽑아내는 석유) 업체의 타격이 크다. 미국 경제지 '포브스'는 "셰일업체의 피해가 바이러스처럼 확산하고 있다"고 전했다.

 

◆휘발유보다 원유값이 비싸=한국석유공사의 월간수급 통계에 따르면 지난달 국내 석유제품 소비는 전년 동월 대비 2.1% 감소했다. 휘발유(-5.9%)와 경유(-4.7%), 항공유(-4.4%), 벙커C유(선박용·-22.3%) 소비가 일제히 줄었다. 지난 2월 들어 코로나 사태가 본격화하면서 사람들의 이동 및 물류량이 줄어들면서 수송용 연료 수요가 위축됐다. 석유제품 수출이 전년 동월에 비해 8.28% 증가하며 선방했지만 앞으로는 장담하기 어렵다. 정유업계의 한 관계자는 "감염증이 세계적으로 퍼진 3월엔 항공유 등 수출 물량이 크게 감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제마진(석유 제품 가격에서 원유값·수송비 등을 뺀 수치)도 계속 악화되고 있다. 통상적으로 업계에선 정제마진이 4달러 정도는 돼야 손익분기점을 유지한다고 본다. 지난해 12월 정제마진은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원유를 정제해서 휘발유로 팔면 오히려 손해라는 것이다. 이는 2001년 이후 18년 만의 일이다. 정제마진은 올해 초 잠깐 반등하더니 이달 셋째 주엔 배럴당 ―1.9달러로 다시 추락했다. 실제로 25일 싱가포르 현물시장의 휘발유 가격은 배럴당 20.8달러로 같은 날 두바이유(27.1달러)보다 훨씬 저렴했다.

 

석유·화학 기업들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김준 SK이노베이션총괄사장은 26일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코로나 확산에 따른 글로벌 경기 침체와 주요 제품의 수요 감소가 예상돼 경영 환경 불확실성이 더 가중될 전망"이라고 밝혔다. 이달 정제 공장 가동률을 15% 줄인 SK이노베이션은 추가 감산을 검토 중이다. 지난해 평균 85.4%였던 국내 정유 4사 정제 가동률은 지난 1월 86.1%, 2월 82.8%로 줄어드는 추세다.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전체 생산량을 줄이는 것이다.

 

◆정유4사, 수요 감소·국제유가 폭락…생산량 감산 수순=정유업계 역시 장기 불황에 코로나19 영향에 따른 수요 감소, 국제유가 폭락까지 겹치며 생산량 감산 수순에 돌입했다. 국내 1위 사업자인 SK에너지는 이달부터 가동률을 기존 100%에서 10∼15% 낮췄고 현대오일뱅크도 가동률을 약 90% 수준으로 조정했다. GS칼텍스와 S-OIL은 아직 공장을 정상 가동 중이지만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가동률 하향조정이 불가피하다는 게 업계의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코로나19와 유가 충격이 겹친 올해 1분기가 최악의 실적을 기록하는 ‘바닥'일 것으로 보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면서 수요가 회복되고 저유가에 따른 원가 하락 수혜가 본격화하면서 2분기 이후 반등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정유사들은 비용 절감 단행 등 비상경영으로 위기에 대응하고 있다. 현대오일뱅크는 지난 24일 강달호 사장을 비롯한 전 임원의 급여 20% 반납과 경비예산 최대 70% 삭감 등 비용 전면 축소를 골자로 한 비상경영체제를 시행하기로 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원유 수요가 언제쯤 회복될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실적 개선은 3분기에나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정유사·美 셰일 업계도 타격=글로벌 정유시장도 앞으로 전망이 그리 밝지 않다. 시장조사 업체 IHS마킷은 "오는 6월까지 매일 석유 1000만 배럴의 초과 공급이 있을 것"이라고 최근 밝혔다. 세계 하루 평균 석유 수요가 약 1억 배럴인 걸 감안하면 10% 정도 남는 셈이다.

 

석유 수요 감소로 국제 유가가 급락하자 글로벌 석유 기업들도 감산에 나섰다. BP는 하루 정제량을 7만 배럴 줄이기로 했고, 하루 20만 배럴의 원유를 정제하던 영국 석유화학업체 이네오스도 생산량을 3만5000배럴 감축했다. 로이터통신은 지난 20일 "프랑스 토탈, 미국 필립스66 등도 생산량을 줄이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그런가 하면 저유가에 미국 셰일업체는 직격탄을 맞았다. 미국 셰일업체의 원유 시추 비용은 러시아·사우디 등 다른 산유국에 비해 높은 편이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40달러는 유지돼야 손실을 피할 수 있지만, 최근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20달러 초반대까지 떨어졌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 23일 "지난해 4월만 해도 시가총액 460억달러(약 57조원)였던 셰일업체 옥시덴털 페트롤리엄의 가치가 최근 100억달러 밑으로 떨어졌다"고 보도했다. 이 업체는 수익이 급감해 고위 임원급의 급여를 평균 68% 삭감하기로 결정했다.

 

채산성이 낮은 소규모 셰일 업체도 상황이 심각하다. 시장조사업체 번스타인 리서치(Bernstein Research)는 "미국 셰일 업체들이 예산을 30%까지 자체 삭감하고 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수요 감소와 더불어 사우디·러시아가 벌이는 '증산 경쟁'이 석유 초과 공급을 부채질하면서 저유가 기조가 유지될 것"이라며 "당분간 정유업체의 고민이 해소되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창수 기자 crucifygatz@fe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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