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국내 부동산신탁업은 14개사가 경쟁하는 427조원대 시장으로 단순 담보관리에서 개발형·책임준공형 신탁까지 경계를 넓혀 왔다. 그러나 최근 부동산 경기 침체와 책임준공 리스크, 자본 규제 강화, 리츠·자산운용사와의 경쟁 등 불확실성이 동시에 불거지며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FETV가 부동산신탁업의 현주소와 각 사별 전략·리스크·전망 등을 심층적으로 짚어보고자 한다. |
[FETV=박원일 기자] 국내 부동산신탁업계가 중대한 전환점에 서 있다. 총수탁고 427조원을 넘어선 신탁사들은 단순한 담보관리자를 넘어 개발형 신탁·책임준공형 신탁을 거쳐 리츠·자산운용과 경계를 허물며 외연을 확장했다.
그러나 최근 부동산 경기 침체와 금융당국의 규제 강화 속에서 ‘안전장치’로서의 위상은 흔들리고 있다. 금융과 부동산의 경계에 선 신탁사가 앞으로 어떤 정체성을 확립하느냐가 산업의 성패를 좌우할 전망이다.
2024년 말 기준 각 사 (연결)사업보고서·감사보고서에 따르면 14개 신탁사 매출액(영업수익)은 1조7448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각각 5094억원, 6964억원 적자를 내며 수익성이 크게 악화됐다. 수년째 이어진 부동산 경기 침체의 여파가 고스란히 반영된 결과다.
![부동산신탁사 현황(자산 순) [자료 각사 사업보고서 및 감사보고서]](http://www.fetv.co.kr/data/photos/20250940/art_17591298738536_88024f.jpg?iqs=0.7676924568542819)
또한 전체 신탁사의 신탁계정대 잔액은 올해 6월 말 기준 약 8조5000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9.8% 증가했다. 이는 신탁사 자기자본 5조6000억원의 1.5배 수준에 달한다. '신탁계정대'는 사업비를 조달하기 위해 고유계정에서 신탁계정으로 대여한 금액으로 시공사가 준공 기한을 지키기 어려운 경우 투입된다. 추후 회수하지 못하면 부동산신탁사의 손실로 인식된다.

장기화된 부동산 침체는 시행사 부도 위험을 키우고 그 부담은 곧 신탁사들의 책임준공 리스크로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법원은 최근 물류센터 관련 책임준공 소송에서 신탁사의 미이행 책임을 인정해 대출 원리금 전액 배상을 판결했다. 지난 5월 평택 물류센터 사건에 이어 연이어 나온 판결로 업계에선 향후 유사 소송에서 불리한 해석이 자리 잡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사실상 신탁사가 보증기관 역할을 하면서 손실이 재무제표에 반영되는 구조다.
여기에 금융당국은 자기자본 규제와 건전성 관리 강화를 통해 제도적 압박을 높이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6월 토지신탁 사업의 내실화를 위해 금융투자업규정 개정안을 의결했다. 핵심은 신탁사의 책임 능력을 초과하는 무분별한 사업 확장을 막는 것이다. 자기자본 대비 토지신탁 총위험액 한도도 신설해 올해 말까지는 150%, 내년 말까지는 120%, 2027년부터는 100%로 단계적으로 축소한다.
이처럼 시장 상황과 규제 여건이 신탁사에게 우호적인지 않은 상황에서 동시에 신탁사는 기회 요인도 갖고 있다. PF(Project Financing) 시장이 급속히 위축되면서 신탁사가 ‘대체 자금 공급자’로 주목받고 있기 때문이다. 조합과 토지주는 여전히 책임준공형 신탁을 선호한다. 금융조달의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최근의 판결과 실적 악화로 인해 신탁사들은 신규 계약 조건을 한층 보수적으로 검토하는 분위기다. 전문가들은 “지금처럼 신탁사가 모든 리스크를 떠안는 구조는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하지 않다”며 “계약구조 재설계와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은행·증권 계열 신탁사들은 그룹 차원의 금융 인프라와 네트워크를 활용해 안정적인 자금 조달 능력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향후 산업 지형도 역시 변화가 불가피하다. 리츠·자산운용사와의 자산관리 경쟁이 본격화되는 가운데 일부 신탁사들은 해외 부동산 개발사업을 모색하며 외연 확장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동시에 블록체인 기반 등기와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한 자산관리 등 디지털화 움직임도 점차 속도를 내고 있다.
![한국토지신탁 리츠사업 관리자산 규모 추이 [자료 한국토지신탁 2025년 2분기 IR자료]](http://www.fetv.co.kr/data/photos/20250940/art_17591301033235_ebcc84.jpg?iqs=0.8299524813826444)
업계 전문가들은 “부동산신탁사가 앞으로도 시장의 ‘안전망’ 역할을 유지·강화할 것인지 아니면 자산관리·투자까지 아우르는 ‘투자기관’으로 진화할 것인지가 최대의 과제”라고 입을 모은다. 산업의 향방에 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