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TV=나연지 기자] 차세대 인공지능(AI) 반도체용 메모리 HBM4(6세대)를 둘러싼 글로벌 3사의 경쟁이 본격화됐다. SK하이닉스가 세계 최초 양산 체제를 구축하며 한발 앞서 나간 가운데 삼성전자는 초미세 공정으로 반전을 노리고 있다. 반면 미국 마이크론은 구조적 한계로 엔비디아 요구 성능을 맞추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는 평가다.
업계 한 관계자는 “SK하이닉스는 세계 최초 양산 체제와 점유율 우위를 무기로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고, 삼성전자는 초미세 공정 조합을 통한 성능 우위를 확보하며 수율 안정화와 고객사 검증을 거쳐 반전을 노리고 있다. 마이크론은 구조적 제약을 해소하지 못할 경우 입지가 좁아질 수 있다”고 평가했다.
HBM4 경쟁의 방아쇠는 엔비디아가 당겼다. 업계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최근 주요 공급사에 HBM4 동작 속도를 기존 국제표준(JEDEC) 8Gbps에서 9Gbps 이상으로 끌어올려 달라고 요구했다. 내년 출시 예정인 차세대 GPU ‘루빈(Rubin)’의 성능 병목을 해소하기 위해서다. 시장에선 사실상 10Gbps 이상이 새로운 기준으로 자리 잡을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기존 HBM3E(5세대)의 표준 속도가 8Gbps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 세대 만에 요구치가 크게 높아진 셈이다.
SK하이닉스는 지난 12일 HBM4 개발 완료와 양산 체제 구축을 공식화했다. 고객사 인증만 남겨둔 상태로, 엔비디아에 곧바로 납품할 준비를 마쳤다는 의미다. 이번 HBM4는 데이터 전송 통로를 2048개로 확대해 대역폭을 전 세대 대비 두 배 늘렸다. 전력 효율도 40% 이상 개선됐다. 동작 속도는 10Gbps 이상으로, 엔비디아가 제시한 요구치에 부합한다.
SK하이닉스는 올해 2분기 HBM 시장 점유율 62%로 1위를 기록했다. 특히 HBM3E에서 높은 수율을 확보하며 엔비디아에 가장 많은 물량을 공급했다. 업계는 “HBM3E에서 입증된 수율 우위를 HBM4에서도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달 말 주요 고객사에 HBM4 최종 샘플(CS)을 출하를 준비중인것으로 보인다. 업계 최초로 1c(6세대) D램과 4나노 로직 다이를 동시에 적용한 구조다. SK하이닉스가 대만 TSMC의 12나노 파운드리 공정을 활용하는 것과 대비된다. 더 미세한 공정을 적용하면 동일 패키지 크기에서 집적도를 높이고, 전력 소모를 줄일 수 있다. 로직 다이에서는 인터페이스 속도와 신호 무결성을 개선해 병목 현상을 해소할 수 있다.
다만 변수는 수율 안정이다. 후공정에서 불량률이 있던 전례가 있어 실제 양산 과정에서 안정적인 생산성이 확보돼야 한다. 삼성은 지난 6월 1c D램 개발을 완료하고 양산 승인(PRA)을 받은 상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의 HBM4 속도는 안정적으로 나오고 있으며, 엔비디아가 요구한 사양을 충족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HBM4 [사진 SK하이닉스]](http://www.fetv.co.kr/data/photos/20250938/art_17579193309314_64dabb.jpg?iqs=0.8135111160390562)
마이크론이 36GB 용량의 HBM4 샘플을 출하하며 경쟁에 나섰지만 기술적 제약이 부각되고 있다. 마이크론은 여전히 DRAM 베이스 다이를 기반으로 설계를 유지하고 있어 SK하이닉스·삼성이 도입한 로직 베이스 다이에 비해 대응이 어렵다는 평가다.
앞선 관계자는 “마이크론이 DRAM 베이스 다이를 고집하면서 9Gbps 이상 구현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엔비디아가 요구하는 하이엔드 GPU용 HBM4 공급망에 편입되기 어렵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투자 속도도 상대적으로 더디다. 업계는 마이크론의 HBM4 설비 확충과 양산 준비가 지연되고 있다고 본다. 마이크론은 오는 23일(현지시간) 실적 발표를 앞두고 있으며, 이 자리에서 HBM4 대응 전략을 구체적으로 내놓을지가 주목된다.
또 다른 관계자는 “HBM4는 단순 속도 경쟁이 아니라 수율과 공정, 패키징 기술까지 종합적으로 평가받는다”고 말했다. 이어 "칩을 단순히 쌓는 문제가 아니라, 설계 역량과 파운드리 제조 능력이 중요하다. 삼성은 이 부분에서 강점을 갖고 있어 내년 성과가 기대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