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제약·바이오 분야에서 R&D는 미래 경쟁력을 좌우하는 척도다. R&D를 어떤 방식으로 설계하고 기술 자산을 구조화하는지가 전략 로드맵의 핵심이기도 하다. 연구개발비가 단순한 투자가 아닌 기업의 자산으로 자리하고 있는 배경이다. 이에 FETV는 R&D 전략과 자산 구조를 통해 각 사의 재무구조와 미래 경쟁력을 살펴보고자 한다. |
[FETV=김주영 기자] 한미약품이 꾸준히 R&D(연구개발) 투자 자금을 늘리고 있다. 여기엔 기존 파이프라인을 중심으로 한 안정적인 실적이 든든한 배경이 되고 있다. 지난해엔 자산화한 개발비 중 절반 정도를 손상차손으로 처리하면서 부담이 생기긴 했지만 이는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마련하기 위한 단계로 볼 수 있다.
제약사는 통상 투자된 개발비 일부를 자산화한다. 상당한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는 신약 개발은 성공했을 시 막대한 수익을 가져다준다. 투자자에게 기업가치를 효과적으로 어필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때문에 자산화한 개발비가 손상차손 처리되더라도 R&D에 지속적으로 비용을 투입하는 구조가 형성된다.
한미약품의 2024년 연결기준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자산화된 개발비는 169억7000만원이다. 이는 전체 R&D 비용의 8% 수준이다. 이 같은 비율은 보수적인 회계처리를 기반으로 한 판단으로 기술성·시장성이 충분히 검증된 파이프라인에 한해 자산화가 적용된다.
현재까지 자산화된 파이프라인은 28개다. 이는 회계상 가치가 있다고 판단돼 자산으로 잡힌 신약 개발 과제를 일컫는다. 이 중 고지혈증 치료제 성분인 ‘에제티미브’ 관련 항목으로 인식한 자산화된 개발비는 166억원으로 비중이 가장 크다. ‘포사코나졸’ 70억원, ‘HIP0612’ 50억원, ‘에페’ 28억원 등이 뒤를 잇는다. 상위 4개 파이프라인만으로 전체 자산화 개발비의 절반 이상(약 49%)을 차지하고 있어 특정 성분에 대한 집중도가 높다.
이 가운데 자산화된 개발비의 절반 이상이 지난해 손상차손으로 인식됐다.
개발비 관련 총 취득원가는 약 1910억원이며 감가상각 누계액은 459억원, 손상차손 누계액은 965억원으로 나타났다. 자산화된 개발비의 상당 부분이 회수 불가능하거나 수익화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됐다는 의미다.
한미약품은 HCP1105, Olmutinib, 파텐션츄정, 글리메피리드 메트로포민 정제, 레바피드, 암로디핀 베실레이트로 사르탄칼륨정제, 저용량 아모잘탄플러스 항목에 대해 개발을 중단하기로 결정해 전액을 손상차손 인식했다고 밝혔다. 상위 4개 파이프라인이 아닌 다른 항목에서 손상차손이 반영됐다는 의미다.
이 중 암로디핀 베실레이트로 파텐션츄정은 2022년, 사르탄칼륨정제는 2023년, 아모잘탄플러스는 2024년 개발을 중단해 3년 동안 손상차손액이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한미약품은 소위 ‘블록버스터’ 품목을 배경으로 매출을 끌어올리며 안정적인 수익을 유지할 수 있었다. 실제 연결기준 매출은 1조4955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소폭 증가했다. 영업이익은 2161억원으로 2.1% 감소했지만 한미약품으로서는 큰 폭의 변화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다만 개발비 반영되는 손상차손은 영업외비용으로 처리된다. 특히 기타영업외비용이 전년보다 약 170억원 증가했다. 이로 인해 당기순이익이 1404억원으로 15.1% 감소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흑자를 유지하고 있는 만큼 여기서 발생하는 수익을 R&D에 재투자하는 구조로 설계된 것으로 분석된다.
현재 한미약품은 이상지질혈증·대사 중심의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있다. 특히 ‘로수젯’은 1603억원, ‘아모잘탄’ 999억원, ‘에소메졸’ 486억원, ‘한미탐스’와 ‘팔팔정’ 시리즈도 각각 수십억원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한미약품은 이러한 포트폴리오를 기준으로 비슷한 기전의 신약을 개발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무형자산 손상차손이 생기더라도 그중 성공한 제품이 '로수젯'과 같이 향후 전체 매출을 견인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한미약품 R&D 연간 투자 비용. [자료 전자공시]](http://www.fetv.co.kr/data/photos/20250417/art_17453093272105_2a7807.png)
2024년 R&D 투자액은 2097억원으로 최근 3년간 평균 2000억원 이상을 기록했다. 매출 대비 R&D 비중은 2022년 13.4%에서 2024년 14.0%로 상승했다. 국내 주요 제약사 중에서도 높은 수준이다. 연구원 또한 676명으로 전년 637명 대비 39명을 추가로 영입했다.
현재 한미약품이 집중하고 있는 핵심 전략은 비만과 대사질환을 중심으로 한 ‘비만 전주기’ 파이프라인 구축이다. 고지혈증·대사 시장에서 높은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한미약품은 단순한 체중 감량을 넘어, 체중 유지, 섭식장애 개선, 근육 증가, 디지털 복약 순응도 관리까지 통합하는 방식으로 비만 시장에 진출한다.
대표적으로 한미약품의 ‘LAPSCOVERY’ 플랫폼이 적용된 GLP-1 기반 비만 치료제는 장기지속형 저분자 제형으로 경구 투여가 가능하고 위장관 부작용이 적다. 기존 GLP-1 계열 약물인 위고비, 삭센다 등의 비만 치료제 대비 심혈관 및 신장 질환 보호 효과가 높으며 2026년 말 출시를 목표로 임상 3상 환자 모집을 완료한 상태다.
한미약품은 해당 제품을 출시한 후 연매출 1000억원 이상을 기록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26년 출시 예정인 한미약품의 비만 치료제가 연매출 1000억원을 상회할 경우, 로수젯·아모잘탄에 이은 주력 품목으로 자리매김할 전망이다. 이는 단일 품목 기준으로도 전체 매출의 약 7%를 차지하는 규모다.
또한 이와 연계해 GLP-1/GIP/Glucagon 삼중 작용을 활용한 신약을 개발 중이기도 하다. 해당 파이프라인은 2024년 5월 FDA의 IND 승인을 받고 현재 임상 1상 중이다. 2025년 하반기 임상 2상 진입이 예정돼 있다.
이 외에도 한미약품은 패치제, 월 1회 제형, 디지털 플랫폼을 활용한 복약 순응도 향상 등 비만 치료의 전 주기적 해결책을 마련 중이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단기적인 수익보다 장기적인 기술 축적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