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TV=권지현 기자] 국내 대형은행들이 취급한 기술신용대출 규모가 1년 만에 5조원 이상 줄면서 힘겹게 지켜오던 150조원대 기록이 깨졌다.
금융당국이 2022년 9월부터 대출 대상 업종 심사를 강화해 기술 관련성이 약한 중소기업들이 기술신용대출 대상에서 제외되기 시작한 데다 고금리 장기화에 경기둔화까지 겹치면서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들이 이탈한 점이 영향을 미쳤다.
'착한 대출'로 불리는 기술신용대출은 자본이 부족하고 신용도도 높지 않은 중소기업에 기술력을 담보로 낮은 금리로 제공하는 대출이다. 지식재산권(IP) 대출을 포함한 기술금융의 가장 큰 부분으로, 기업의 기술 혁신 전 과정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한다. 현재 인터넷전문은행을 제외한 국내 시중·지방·특수은행 17곳은 2014년 하반기부터 모두 기술신용대출을 취급하고 있다. 은행은 중소기업이 대출을 신청하면 기술보증기금·한국기업데이터·나이스평가정보 등 기술신용평가기관(TCB)에 평가를 의뢰해 대출 여부를 결정한다.
2일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국내 4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의 지난 7월 말 기준 기술신용대출 누적 잔액은 147조4317억원으로, 전월(149조4246억원)보다 약 2조원 줄어들었다. 1년 전(152조9232억원)보다는 5조4915억원 감소했다. 4대 은행 기술금융 잔액은 지난 6월까지만 해도 150조원대를 유지하려는 모습이었으나 7월 150조원을 완전히 밑돌게 됐다. 국내 대형은행 기술금융 잔액이 147조원대로 내려앉은 것은 작년 7월 이래 이번이 처음이다.
은행별로는 7월 말 기준 신한은행이 유일하게 40조원을 돌파했으며, 하나은행(37조7614억원)과 우리은행(34조5056억원)이 뒤를 이었다. 국민은행은 내내 신한은행과 선두 경쟁을 벌였으나 작년 12월 34조원대로 기술금융 잔액이 대폭 낮아지더니 올해 7월에는 33조원을 밑돌았다.
추세를 살펴보면, 4곳 중 국민은행을 제외한 3곳에서 7월 기술신용대출 잔액이 전월보다 줄어들었다. 작년 7월 말 기준으로는 하나은행을 뺀 3곳에서 기술금융 잔액이 감소했다. 월마다 은행 차이가 있지만 대형은행 전방위적으로 기술신용대출 규모가 축소되고 있다는 뜻이다. 이들 은행은 17개은행 기술금융 전체 잔액의 절반 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4대 은행의 7월 말 기준 기술금융 누적 건수는 31만6914건으로 전월(32만2482건)과 비교해 5568건 줄었다. 1년 전(37만1221건)보다는 5만4307건 크게 감소했다. 4대 은행의 기술신용대출 건수는 작년 11월(36만3240건)까지만 해도 35만건을 웃돌았으나 12월부터 이를 하회, 올해 7월에는 32만건에도 미치지 못했다. 역시 지난 1년래 최저 수준으로, 작년 7월부터 12개월 연속 하락세다.
은행별로는 내내 누적 건수 10만건을 웃돌았던 국민은행이 지난 7월 9만410건으로 겨우 1등을 지켰으며, 신한은행과 하나은행이 각각 8만9487건, 8만2049건으로 뒤를 이었다. 신한·하나은행은 작년 7월 모두 9만건을 넘어섰으나 1년 만에 앞자릿수가 달라졌다. 우리은행은 5만4968건으로 지난 3월 이후 계속 6만건을 밑돌고 있다.
고금리 장기화에 경기둔화까지 겹치면서 신규 대출에 부담을 느낀 중소기업들이 늘어난 데다 금융당국이 관련 가이드라인을 강화, 대출 문턱을 높인 것이 시차를 두고 기술금융 건수·누적액 감소로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당국은 2022년 9월부터 금융지원이 가능한 기업들이 대출 지원 대상으로 선정될 수 있도록 사전선별을 강화했다. 사전선별을 거친 기업을 대상으로 사업재편 종합지원센터에서 재무상황을 파악하고 한계기업 여부, 자본잠식 등 결격사유 해당여부를 따진다. 결격사유 심사를 통과하면 TCB가 기술성과 사업성 여부를 판단한 뒤 대출을 내준다. 당국으로선 자원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이었지만, 이전보다 깐깐해진 조건은 신용등급이 낮은 중소기업과 기술 연관성이 상대적으로 적은 기업들을 대출 대상에서 제외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한 대형은행 관계자는 "기술금융의 경우 그간 은행들이 대출 의사 결정에서 지나치게 담보에 의존해 중소기업은 자금부족에 직면하고 은행은 사업기회를 잃는 결과를 얻기도 했다. 이에 은행들이 대출 대상 기업의 상환능력을 보다 정확하게 측정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영세기업에게는 외부 자금 조달 가능성, 신사업 진출 타당성 등을 이전보다 더 따지다보니 기존 대출을 연장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해 기술신용대출 잔액이 축소되는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기술금융은 저성장이 추세적 현상으로 자리 잡고 있는 현실에서 중소기업, 특히 기술집약형 중소기업의 새로운 성장 동력 확보 지원을 위해 정부가 편 정책인 만큼 잣대의 타당성을 좀 더 들여다보고 정책적 보완을 이어가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박창균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술 중소기업에 대한 부도 예측력이 향상된다는 전제 하에 대출·보증 기관이 기술 중소기업의 재무정보와 기술평가정보를 감안하고 있으나 정작 실증분석 연구는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