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TV=권지현 기자] "지속적인 자사주 매입 소각을 통해 밸류업 모범생으로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는데 일조하겠다" (KB금융지주)
"2027년 말 4억5000만주까지 주식수를 감축해 주당 가치를 제고하고, 2027년까지 주주환원율 50%를 달성하겠다" (신한금융지주)
"하반기 기업 밸류업 계획을 공시하는 등 그룹의 기업가치와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추진하겠다" (하나금융지주)
"자사주 소각을 통해 정부가 추진하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과 시장의 높아진 기대치에 적극적으로 호응했다" (우리금융지주)
정부 '밸류업(기업 가치 제고)' 정책에 발맞춰 대형 금융지주의 자사주 매입·소각 경쟁이 어느 때보다 뜨겁다.
올해 4대 금융지주는 모두 5000억원 안팎 규모로 자기주식 500만~1000만주가량을 태웠거나 태울 예정이다. 이달에만 KB·하나금융지주 두 곳에서 1500만주가 넘는 자기주식 소각이 예정돼 있다. 금융지주들이 그간 배당을 늘리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최근 구체적인 지표·기한을 제시하며 주식 수를 줄이는 데 더 집중하는 모습이다. 낮은 PBR(주가순자산비율) 상태에서는 배당 확대보다 주식 수 감축이 주가 가치를 끌어올리는데 더 효과적이라는 판단이 작용한 결과다. 시가총액과 배당 총액이 동일할 경우 주식 수가 줄어들면 주당 가치와 배당금은 상승하게 된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금융지주는 오는 14일 KB금융 주식 998만2649주를 전량 소각한다. 작년 8월부터 취득한 자기주식 558만4514주(취득가 3000억원)와 올해 2월부터 취득한 439만8135주(취득가 3200억원)를 함께 없앤다. 7일 종가(8만1600원) 기준 약 8146억원 달하는 규모다. 소각 관련 절차는 9월 중순 완료될 예정이다. 여기에 더해 KB금융은 4000억원 규모로 자사주 매입·소각에 올해 한번 더 나선다. 이달 26일부터 내년 3월 4일까지 자기주식 462만4277주를 사들인 뒤 전량 태울 예정이다. 연초부터 8월까지 KB금융이 자기주식 소각 관련 절차를 진행하고 있는 총 주식 수는 1460만주가 넘는다.
![2024년 4대금융 '자사주 소각' 착수·완료 총 주식수(1-8월 기준). [자료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http://www.fetv.co.kr/data/photos/20240832/art_17230754951779_654c6f.png)
신한금융지주는 3000억원 규모로 신한지주 주식 689만6551주를 소각하기 위해 지난 4월 말부터 신탁계약 방식을 통해 장내매수하고 있다. 7일 종가(5만3700원) 기준 3704억원에 달한다. 오는 10월 말 자기주식 취득이 완료되면 전량 소각할 계획이다. 앞서 신한금융은 올해 2월부터 자사주 336만6257주(취득액 1500억원)를 사들인 뒤 3월 전량 태운 바 있다. 신한금융도 연초부터 이달까지 자사주 소각 절차에 나선 주식 수가 1000만주 이상이다. 지난달에는 상반기 실적을 발표하며 2024년 말 5억주까지 주식 수를 줄이겠다고 밝혔다. 현재 신한지주 발행주식 수는 5억939만3214주다. 목표대로라면 신한금융은 이번 자사주 소각분을 제외한 249만6663주를 연내 추가로 매입·소각하게 된다.
4대 금융 중 상장주식 수가 가장 적은 하나금융지주는 오는 19일 자기주식 511만5718주(취득가 3000억원)를 전량 태울 예정이다. 7일 종가(5만9400원) 기준 3038억원이 넘는 규모다. 이번 소각을 위해 하나금융은 지난 2월부터 6개월간 자기주식을 취득해왔다. 앞서 우리금융지주는 지난 3월 예금보험공사가 보유하던 우리금융 잔여지분 935만7960주(취득가 1366억원) 전량을 자사주로 매입해 같은 달 모두 태워없앴다.
국내 금융지주가 전례 없는 자사주 소각 경쟁을 벌이며 밸류업 모범생을 자처하는 가운데, 단기적 시각이 아닌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기업은 이익을 유보해 투자 재원으로 활용하는데, 과도한 자사주 매입 등으로 기업들이 충분한 투자를 할 수 없다면 회사 성장이 저해되고 기업가치도 낮아질 수 있다는 우려다.
이보미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나라 밸류업 프로그램은 금융당국 주도로 마련돼 각종 세제 혜택 등 일본에 비해 적극적인 인센티브가 제공된다는 점에서 효과를 더욱 기대할 수 있다"며 "특히 PBR, ROE(자기자본이익률)를 높일 수 있는 주주환원 정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자사주 매입·소각 계획을 발표하고 배당을 늘리는 것은 ROE와 PBR을 높이는 가장 빠른 방법이지만, 과도한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은 기업의 투자 재원을 감소시켜 장기적으로 ROE와 PBR을 하락시킬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