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TV=최명진 기자] 지난달 말 별세한 넥슨의 창업주 고 김정주 NXC 이사는 많은 것을 남기고 떠났다. 1세대 게임 개발자라는 타이틀과 함께 6000만원이라는 적은 돈으로 시총 25조에 달하는 대기업 신화를 세운 고인이 떠나면서 남긴 것은 무엇일까?
먼저 15조원에 달하는 그의 막대한 유산이다. 특히 고인이 가지고 있던 넥슨의 지주회사인 NXC의 지분 67.49%의 향방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현행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따라 현재 예상되는 총 상속세율은 65%다. 유가족들은 10조원으로 추정되는 고인의 지분을 상속하기 위해서는 6조5000억원이 필요하다.
지분 상속 시 거액의 상속세를 어떻게 납부하느냐가 관건이다. 전문가들은 상속으로 가닥이 잡힌다면 분납의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일례로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사망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일가가 12조원 규모의 상속세를 분납하기로하고 지난해 2조원 가량의 상속세를 납부했다.
반대로 유가족들이 거액의 상속세를 내는 것보다 고인의 지분을 매각할 것이라는 예상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하지만 앞서 지난 2019년 고인은 NXC를 매각하려고 했지만 10조라는 거액의 인수 자금을 감당할 곳이 없어 무산된 바 있다. 특히 넥슨 재팬이 시가총액 24조원이 넘는 회사로 성장했기에 매각을 다시 추진한다고 하면 현재 매각가는 15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 혹은 대형 사모펀드들의 연합인수 시도가 없다면 지분 매각은 많은 시간이 걸리거나 아예 불가능할 것이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다만 지분과는 별개로 경영은 당분간 현상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지분 상속시 배우자 유정현 NXC 감사가 NXC의 최대 주주로 올라선다. 재계에서도 대표 사망 시, 아내가 경영권을 승계한 사례가 있어 불가능한 시나리오는 아니다. 다만 유 감사가 지금까지 경영 일선에 서지 않았으며, 고인이 신뢰했던 전문 경영인들에 의한 경영 체계를 바꾸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여기에 고인이 생전 "자녀에게 회사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공식 선언했던 만큼 슬하의 두 딸에게도 회사 경영권을 승계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결론적으로 넥슨은 유가족이 지분을 상속한다면 경영과 소유권이 완전히 분리된 회사가 되는 셈이다. 다만 지분 매각이 성사되면 지배구조에 큰 변동이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고인은 생전 “넥슨을 한국의 디즈니로 만들고 싶다”는 꿈을 이야기해왔다. 넥슨의 주 고객층이 아동과 청소년이며, 현재의 성인 이용자들도 어릴 때부터 넥슨 게임을 접한 경우가 많다. 이에 고인은 꿈의 주역이 될 아동 청소년들을 위해 많은 사회공헌 활동을 실천해 왔다.
고인은 푸르메재단 넥슨 어린이재활병원 건립을 위한 200억원을 시작으로 어린이 병원 건립에만 500억원을 기부했다. 오는 11일에는 생전에 마지막으로 후원한 서울대 넥슨 어린이 완화센터의 기공식이 진행될 예정이다.
넥슨도 고인의 못다 이룬 꿈을 위해 팔소매를 걷었다. 넥슨은 오는 25일 열리는 정기주주총회에서 사업 목적에 ‘놀이설비를 포함한 시설의 기획과 경영’, ‘이벤트 기획과 경영’, ‘음식점업’을 추가하는 정관 변경 안건을 의결할 예정이다. 이는 게임 외에도 영화, 만화 등 콘텐츠 관련 투자를 해왔던 고인의 유지를 이어 넥슨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IP를 집대성한 테마파크 조성을 위한 첫 발로 해석된다.
그는 게임업계뿐 아닌 IT 벤처업계에도 큰 발자취를 남겼다. 생전 해외 창업자들을 만나 조언을 구한 고인은 한국 벤처업계 활성화를 위해 후배 창업자들과의 만남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특히 고인의 조언 혹은 투자에 힘입어 업계에서 두각을 드러냈다고 알려진 기업인들은 이번 소식을 접한 뒤 그를 영원한 멘토로 추억하며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고인과 서울대학교 동문인 박재욱 쏘카 대표는 사망 소식에 큰 슬픔을 표하면서 고인과의 첫 만남을 추억했다. 박 대표는 “처음 뵈었을 때 ‘회장님’이라 부르니 ‘니가 그렇게 날 부르면 내가 널 편하게 자주 만날 수 있겠니? 정 어떤 호칭을 쓰고 싶으면 선배님이라고 불러’라고 하셨던 말씀이 기억 난다”고 했다.
그는 또 “김정주 선배님은 많은 것을 이루신 분이지만 후배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눌 때 어떠한 벽도 느껴지지 않고 눈높이를 맞춰 이야기 해주시는 분이었다”고 고인을 추억했다. 이어 “고민되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기꺼이 시간을 내서 귀를 기울여주시는 분이었다”며, “선배님이 남기신 정신을 잘 기억하고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글을 남겼다.
고인으로부터 계약서도 없이 10억원을 투자받았다고 밝힌 김문수 스마투스 대표는 게임을 좋아하던 고인의 생전 모습을 떠올리며 추모글을 올렸다.
김 대표는 “약속장소에 먼저 도착해 게임을 하고 있으니 어느새 면바지를 입은 고인이 옆에서 구경하고 있었다. 서로 게임에 대해 신나게 이야기를 나누고 몆 주 후 다시만난 고인으로부터 10억원의 투자를 받았다”며, “큰 신세를 졌지만 한참 동안 보답하지 못했다. 이제 보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황망하게 하늘의 별이 되셨다. 앞으로 디지털 세상을 누비며 하실 일이 많은데 너무 빨리 떠나셨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넥슨 출신으로 ‘아기상어’를 제작한 김민석 더핑크퐁컴퍼니 대표도 “모든 면에서 인생의 롤모델이었다. 2013년 첫 투자를 받고 100배로 불려드리기로 했는데 이제 60배가 됐다. 100배가 되면 약속 지켰다고 자랑하고 싶었는데...”라고 고인에 대한 황망한 마음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