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익=영화제작자] 영화사에서 ‘영원한 걸작’으로 꼽히는 명화 ‘대부’에는 음식이야기가 참 많이 나온다. 이는 감독 프란시스 코폴라의 취향과도 무관하지 않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 돈 콜레오네(말론 브란도)가 저격을 당한 뒤 마피아 패밀리간에 피의 보복이 계속 된다. 무장을 한 수십 명의 구성원들이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항쟁을 대비하느라 함께 먹고 잔다. 이 때 간부 클레멘자가 돈의 셋째 아들 마이클 콜레오네(알 파치노)에게 음식을 가르치는 장면이 있는데 대충 묘사하면 이렇다. "마이키, 이리 와봐.? 너도 언젠가는 한 20명을 먹일 요리를 해야 할 때가 올지도 몰라.? 이걸 보라구. 우선 올리브 오일을 부은 다음? 마늘을 넣고 볶지. 그 다음에 토마토와 토마토 페이스트를 넣고 또 볶는데, 이?때 눌어붙지 않게? 조심해야 돼. 그리고 이렇게 소시지하고 미트볼을?쏟아 붓고 와인을 넣지. 그리고 이건 나만의? 비결인데,? 설탕 약간." 영화는 거의 요리 강좌수준의 비주얼을 보여준다. 이게 사실은 코폴라 감독이 많은 배우들을 불러모아 대본 리딩을 하거나 리허설을 할 때 만들어 먹이는 레시피라고 한다. 그는 이태리계 미국인답게 음식과 와인을 사랑하며 많은 사람
[이주익=영화제작자] 에델바이스, 도레미송 등 아름다운 선율의 명곡들로 가득 찬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은 관광산업에서도 잘 만든 영화 한편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 가를 잘 보여준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찍은 이 영화 덕택에 지금도 현지에서는 ‘사운드 오브 뮤직 투어’등 촬영지 순례 같은 다양한 상품이 마련되어 관광객을 맞이한다. 이 영화를 TV로 접했던 지금의 젊은 세대들에겐 그 임팩트가 덜할 수도 있겠지만 필자 세대에는 이 영화를 보고 누구나 잠을 못 이루거나 영화를 보고 또 보며 영화 속의 세계에 푹 빠진 이들이 엄청 많았다.그림에서나 보던 알프스 밑의 호숫가 대저택. 예쁘고 잘생긴 아이들이 절경 속에서 들로 산으로 다니며 춤추고 노래하는데 어찌 매료되지 않을 수 있었을까. 그리고 신분을 뛰어넘어, 심지어는 주님과의 약속도 내치고 참사랑을 찾는 주인공 마리아의 이야기에 모두들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영화 속에 들어간 많은 노래가운데 ‘My Favorite things’는 스탠다드 명곡이 되어 많은 재즈 뮤지션들이 부르거나 연주하기도 하였다.‘개가 물거나 벌이 쏘거나 내가 슬퍼질 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생각만 하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이주익=영화제작자] "산허리는 온통 메밀 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이효석의 명단편 ‘메밀꽃 필 무렵’에 나오는 이 구절은 한국에서 중등교육을 받은 이라면 누구라도 익히 읽고 들어본 대목이다. 이효석은 강원도 평창 출신이다.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 가운데 ‘시간의 강’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아름다운 한국의 사계를 보여주는데, 여기에도 꽃이 만개한 평창 메밀밭의 전경이 나온다. 영상기술의 발달과 보급 덕에 현대인들은 TV가 쏟아내는 전 세계의 명승절경을 거실에 앉아서 관람한다. HD를 넘어서 UHD, 4K 등의 이름으로 초고화질의 영상매체가 등장한 요즈음은 그래서 웬만한 풍경이 아니면 감동을 받기가 쉽지 않다. 우리들이 살아가며 머릿속에 간직하고 있는 아름다운 풍경들은 실제로는 기억의 왜곡에 힘입은 것들이 많다. 그래서 힘을 발휘하는 게 애니메이션이다. 디즈니의 여러 작품에 나오는 몽환적인 배경화나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에서 극 사실적인 듯하면서도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배경화는 상상의 산물이기에 더욱 감동으로 다가와 보는 이들의 뇌리에 깊숙이 박힌다. 한국에서도 이런 애니메이션이 나왔으면 하고 목말라하
[이주익=영화제작자] 영화 <강철비>에서 북에서 온 철우 역은 정우성이 맡았고, 남쪽의 철우 역은 곽도원이 맡았다. 남과 북의 요원이 함께 어울리는 또 다른 영화 <공조>에서는 북측을 현빈이, 남측을 유해진이 각각 맡아서 열연한다. 남측 요원보다 북쪽 캐릭터에 더 잘생긴 배우를 배치한 것은 한국 영화계와 관객층이 그만큼 여유가 있다는 걸 반증한다. 옛날엔 실제로 이보다 못한 일을 가지고도 찬양고무죄로 고초를 겪어야 했던 시절이 있었으니까.이 영화에서 정우성은 덫에 걸린 늑대와 같은 처지에 놓여 곽도원에게 불신과 적대감을 내놓고 드러낸다(원래는 극중 인물의 이름을 써야 맞지만 둘이 같은 이름이므로 이 글에서는 배우의 이름을 쓰기로 한다). 그러다가 감정이 다소 누그러지면서 조금씩 둘 사이에 신뢰가 쌓이고 연민이 생겨나는 건 함께 국수를 먹으면서부터다. 둘은 의정부를 지나 연천쯤 가다가 국수집에 들른다. 곽도원은 정우성에게 잔치국수를 시켜준다. 자존심이 살아있는 정우성은 처음엔 국수를 눈 앞에 두고 잠시 머뭇거린다. 그러다 수갑을 찬 채로 먹기 시작하는데, 일단 입에 대니 그야말로 요새 유행하는 표현으로 ‘흡입’ 그 자체다. 눈 깜짝
[이주익=영화제작자] 체 게바라는 여전히 전 세계 많은 젊은이들의 우상이다. 그가 추구하고 실행했던 노선의 반대편에 서있는 나라의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그의 인기는 아직도 식을 줄을 모른다.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의 젊은이들은 그의 얼굴이 담긴 포스터를 방에 걸고, 티셔츠를 입고, 커피잔을 애용하며 혁명가 체 게바라를 흠모하고 숭상한다. <모터싸이클 다이어리>는 바로 그가 젊은 시절 오토바이로 남미를 여행했던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이 작품은 게바라가 남긴 기록인 동명의 책을 바탕으로 만들었고, 원작에 충실하게 따랐기에 극적인 상황이나 반전 같은 영화적 장치는 별로 없다. 그럼에도 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했다. 물론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에 비교할 정도는 아니지만 일반적인 영화들에 비해 지루한 전개에 저예산 작품, 게다가 언어도 스페인어라는 흥행에 불리한 많은 요소를 고려한다면 충분히 흥행에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그 성공 이유의 한 가지로 ‘혁명’이라는 단어가 지닌 묘한 마력을 지적해야 할 것 같다. 혁명은 실제로 치러낸 사람들에게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숱한 과거가 들어있는 단어다. 피, 고통, 죽음 등 끔찍하지만 치러야만 했던 대가가 체험으로
[이주익=영화제작자] <닥터 지바고>의 초반부에는 혁명전야의 모스크바 시내 모습이 잘 묘사되어 있다. 눈이 쌓인 추운 밤거리에 시민들이 몰려나와 시위를 벌인다. 춥고 배고픈 사람들이다. 평화적 시위를 하는 이들에게 차르의 기병대는 가차없는 무력진압을 행한다. 숱한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다친다. 호화로운 실내장식으로 꾸며진 고급 레스토랑에서 춤과 미식을 즐기던 선남선녀들은 잠시 베란다로 나와서 바깥의 소동을 강 건너 불 보듯 무심히 보고는 다시 은은한 실내음악이 흐르는 따스한 실내로 들어간다. 이날 저녁 레스토랑의 손님들 가운데에는 여주인공 라라가 있다. 그녀는 나이는 어리지만 타고난 매력을 뿜어내는 이미 성숙한 여인의 자태가 돋보인다. 그의 데이트 상대는 다른 사람도 아닌 어머니의 연인 빅토르 카마로프스키다. 빨간 융단이 깔린 실내의 고급 테이블에서 웨이터가 주문을 받는데, 카마로프스키는 ‘가스꼰느풍 송아지 간(foie de veau Gascogne) 요리를 시킨다. 이 식당의 메뉴는 당연히 프랑스 요리다. 라라는 아예 불어로 햄(jambon) 요리를 시킨다. 제정 말기 러시아 상류사회에서 프랑스어를 많이 사용하고 프랑스 문화에 젖어있는 모습을
[이주익=영화제작자] 준수한 외모의 소유자도 아니고 세련된 매너나 교양도 없는 젊은 남자가 숱한 미녀들이 나를 숭배하고 따를 거라며 미국으로 떠난다. 그리고 그는 소원을 이룬다. 비결은 하나, 이 청년은 영국인이었다. 영화 <러브 액추얼리>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미국인들은 영국식 발음의 영어 앞에서 약해진다는 사실을 풍자한 에피소드다. 아무리 자기들이 돈이 더 많아도 ‘원조’에 대한 동경은 하루아침에 극복되는 게 아닌 모양이다.음식이야기를 하려는데 먼저 영어 발음 이야기를 꺼낸 건 음식에서도 이와 비슷한 경향이 있어서다. 서양 사람들의 프랑스 요리에 대한 동경이 그것이다. 요즘 프랑스 파리를 가보면 골목골목에 피자를 파는 피짜리아가 있고, 파스타도 파는 트라토리아 역시 흔하다. 그러나 이태리에선 로마, 피렌체, 밀라노 어디를 가도 프랑스 레스토랑은 흔하지 않다. 음식 무역의 불균형이라 부를 만하다. 영국이나 독일 등 유럽 여러 나라에도 이태리 음식의 진출은 몇십 년 들어 괄목할만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유럽만이 아니다. 아시아에서도 최근 들어 타파스라고 해서 스페인 요리를 내는 간이식당이 이곳저곳 생겨나고 있다. 도토리를 먹여 키운 이베리
[이주익=영화제작자] 자신들이 더 오래 되었다고 서로 주장하기 바쁜 중국인의 역사와 유태인의 역사 중 정말 어느 쪽이 더 오래 되었을까? 당연히 중국인 역사가 더 길다. 왜? 중국인이 더 나중에 생겼다면, 그동안 유태인들은 먹고 살 게 없었을 테니까. 이는 유태인들이 중국 요리를 좋아하는 것을 풍자한 미국 농담이다. 미국에서도 특히 유태인이 많이 사는 뉴욕에서는 이 농담이 금세 통한다. 인종적으로 유태인들이 특별히 중국음식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상대적으로 교육 수준도 높고 소득이 높은 계층이 다양한 음식을 즐기기 때문에 그 범주에 들어가는 유태인들이 많은 것이 그 이유라고 짐작한다. 유태인들이 중국 음식을 사랑하는 또 하나의 이유도 짐작이 간다. 가성비가 뛰어나기 때문이다. 아주 저렴한 가격에 테이크 아웃을 해서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것도 미국 내 중국 음식점들의 특징이다.캄캄한 오피스에서 홀로 밤늦게 야근을 하며 종이로 만든 박스에 담긴 볶음국수나 기타 요리를 먹는 장면은 헐리우드 영화에 많이 나오는 장면이다. 대륙횡단 철도 부설을 위하여 중국대륙에서 건너간 노동자들이 남아서 식당을 열고, 중국 음식을 팔기 시작한 것이 미국에 중국요리가 전파된 시
[이주익=영화제작자] 이 영화에서 펼쳐지는 신기하고 매력적인 파리의 밤을 다루기 전에 이야기를 잠시 조선 말로 돌려본다. 1883년 9월 민영익, 홍영식, 서광범 등이 수행원을 데리고 ‘보빙사(報聘使)’라는 이름의 외교사절로 미국을 방문을 하게 된다. 이들 일행은 뉴욕에서 일주일간 산업 시찰도 하고, 업계 인사들도 만나는데, 하루는 방문한 대형 보험회사의 초대로 델모니코스(DelMonico’s)라는 레스토랑에서 점심식사를 대접받는다. 이 레스토랑은 지금도 같은 자리에서 같은 이름으로 200년 전통을 내세우며 영업을 하고 있다. 1883년 9월 18일자 <뉴욕 타임즈> 기사에 의하면, 보빙사 일행은 그런대로 식사를 잘했다고 한다(They eat ordinary fare in an ordinary manner).이들이 어떤 메뉴를 대접받았는지는 기록에 나와있지 않지만, 비슷한 시기에 같은 식당에서 있었던 뉴욕상공회의소 주최의 만찬 메뉴를 코넬대학의 데이터 베이스에서 찾아낸 이가 있어 여기에 옮겨 본다(귀중한 자료를 제공해주신 블로거 적륜 님께 감사드립니다). 사진에서 보듯이 메뉴가 전부 불어로 되어있다. 우선, 찬바람이 부는 11월이니 Huitr
[이주익=영화제작자] 이 글을 쓰기 위해 일본 영화 <탐포포>를 수십 년 만에 다시 보았다. 이 작품은 1985년에 나왔다. 33년이나 된 영화인데 어디 한 군데 고루하게 느껴지거나 요즘의 경향과 거리가 느껴지는 대목이 없어 놀랐다. 이타미 쥬조 감독 작품인데 그의 재능에 다시 한번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작가, 화가, 디자이너, 배우였던 그는 나이 오십이 넘어 감독으로 데뷔했다. 그리고는 십여 년간 맹렬히 활동하며 10개의 작품을 만들고는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모든 작품에는 그만의 독특하고 예리한 풍자와 해학이 넘친다. <탐포포>는 먹는 것에 관한 영화인데, 민들레를 뜻하는 탐포포는 영화 속 여주인공의 이름이기도 하다. 맛있는 라멘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미망인 탐포포와 그녀를 돕는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가 큰 줄거리다. 그러나 이 영화가 가진 또 하나의 매력은 기본 줄거리에 곁가지를 친 다양한 음식에 대한 이야기가 빼곡히 걸려있는데 있다. 영화의 줄거리는 앞으로 이 영화를 감상하실 분들을 위하여 자세히 소개하지 않고, 이 작품을 통해서 나타난 일본의 음식문화를 이야기하기로 한다.우선 이 영화의 소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