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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故 최종현 SK그룹 회장 "떠난지 20년"...남겨진 경영철학 '재조명'

1962년 선경직물 이사로 회사 경영에 본격 참여...창업주 최종건 회장의 별세로 후임 맡아
석유에서 섬유까지 수직 계열화 완성...세계 최초 CDMA 상용화 등 IT강국의 '초석' 다져
10년의 '선견지명'과 '도전정신'으로 승부...SK그룹 "국내 5대 대기업으로 일궈내" 평가

[FETV=최순정 기자] 故 최종현 SK회장이 세상을 떠난지 20년이 됐지만 여전히 그의 도전정신은 살아 숨쉬며 지금까지 재조명 받고 있다. 그는 1956년 선경그룹을 적산불하로 인수했던 SK그룹 창업주 최종건 회장의 동생으로, 미국에서 유학 생활을 하면서 선진 문물을 빨리 접했다.

 

이후 1962년에 선경직물의 이사에 선임되면서 경영에 참여하게 됐다. 그러나 약 10년 후인  1973년 창업주인 형 최종건 회장이  폐질환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선경의 최고경영자로 올라섰다. 이후 활발한 경영 활동을 통해 성과를 드러내며 명실공히  SK그룹을 국내 5대 기업으로 일궈온 1등 공신으로 평가된다. 

 

그가 최고 경영자로 올라선 후 국가 발전은 물론 위상을 높인 대표적인 업적으로 1984년 북예멘 유전개발에 성공하며 대한민국을 ‘무자원 산유국’ 대열에 올렸다는 점이다.  이는 "미래는 도전하는 사람이 만들어 가는 것이다“는 경영철학을 바탕으로 일궈낸 성과였다.

 

 최 회장은석유에서 섬유까지 수직계열화를 완성했고, 세계 최초로 CDMA 상용화로 ICT 강국의 기반을 닦는 등 10년을 내다본 기업인으로 지금까지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최 선대회장은 1973년 그룹 회장에 취임해 당시 섬유회사였던 선경(現 SK)을 세계 일류 에너지‧화학 회사로 키우겠다는 원대한 목표를 천명했다.

 

많은 이들이 불가능한 꿈으로 치부했으나, 최종현 회장은 장기적 안목과 중동지역 왕실과의 석유 네트워크 구축 등 준비를 거쳐 1980년 대학석유공사(유공)를 인수했다.

 

그는 1983년부터 해외유전 개발에 나섰다. 성공확률이 5%에 불과해 주변에서 만류했으나 뚝심있게 사업을 추진했고, 이듬해인 1984년 북예멘 유전개발에 성공했다. 이후 1991년 울산에 합성섬유 원료인 파라자일렌(PX) 제조시설을 준공함으로써 수직계열화를 완성했다.

 

최종현 회장은 1984년 미래설계가 그룹 총수의 역할이라고 강조하며 산업동향 분석을 위해 미국에 미주경영실을 세웠다.

 

이후 정보통신 분야를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고 미국 ICT 기업들에 투자하며 현지법인을 설립해 이동통신사업을 준비했다.

 

1992년 제2이동통신사업자에 선정됐지만 특혜시비가 일어 사업권을 자진 반납했다. 그러나 최종현 회장은 “준비한 기업에는 언제든 기회가 온다”며 내부를 설득해 2년 뒤 한국이동통신 민영화에 참여하며 이동통신사업에 진출했다.

 

당시 주당 8만원 대이던 주식을 주당 33만5000원에 인수하기로 하자 주변에서 재고를 건의했지만, 최종현 회장은 “이렇게 해야 나중에 특혜시비에 휘말리지 않을 수 있다”며 “앞으로 회사 가치를 더 키워가면 된다”고 설득했다.

 

 

또 최종현 회장은 1970년대부터 대한민국을 이끌 인재를 키우겠다는 일념으로 사재를 들여 한국고등교육재단을 설립, 가난한 대한민국 청년들을 조건없이 유학보내는 등 인재양성에 남다른 애정을 보였다.

 

먼저 1972년에 조림사업으로 장학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서해개발(現 SK임업)을 설립했다. 1974년에 사재를 털어 설립된 한국고등교육재단이 44년간 양성한 인재는 국내외 곳곳에서 거목으로 자랐다. 약 3700명의 장학생을 지원했고 740명에 달하는 해외 명문대 박사를 배출했으며 80% 이상이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전경련 회장 시절인 1997년 폐암 말기 진단을 받고 병마와 싸울 때도 산소호흡기를 꽂은 채 경제살기를 호소했던 최종현 회장은 1998년 8월 26일 69세의 일기로 생을 마쳤다.

 

최종현 회장은 폐암으로 갑작스레 타계하기 직전, 화장(火葬)이 드물었던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죽으면 반드시 화장하고, 훌륭한 화장시설을 지어 사회에 가부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가족들이 이를 실천해 사후에도 큰 울림을 일으켰고, 최종현 회장 사후 한달만에 ‘한국 장묘문화개혁 범국민협의회’가 결성돼 ‘화장 유언 남기기 운동’이 전개 됐다.

 

 

최종현 회장이 남긴 경영 DNA는 장남 최태원 회장에게 전해졌다. 최종현 회장이 항상 10년을 내다보고 준비한 끝에 SK를 작물회사에서 석유화학과 정보통신을 아우르는 그룹으로 성장시켰다면, 최태원 회장은 2011년 하이닉스 인수 등을 통해 반도체와 바이오 등으로 사업영역을 화장했다.

 

최태원 회장은 하이닉스 인수 직후 “하이닉스가 SK 식구가 된 것은 SK의 반도체 사업에 대한 오랜 꿈을 실현하는 의미가 있다”며 30년 전 최종현 회장의 못다 이룬 꿈을 언급했다. 최종현 회장이 1978년 미래 산업의 중심이 반도체가 될 것임을 예견하고 선경반도체를 설립했으나 전 세계를 강타한 2차 오일쇼크로 꿈을 접어야 했던 과거를 회상한 것이다.

 

SK그룹은 최종현 회장 20주기를 맞아 최종현 회장의 업적과 경영철학을 기리고 있다.

 

지난 14일 SK그룹은 고인의 업적과 그룹의 성장사를 살펴 볼 수 있는 20주기 사진전을 주요 사업장에서 개최했다. 오는 24일에는 워커힐호텔에서 추모 행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아울러 구성원의 기부금을 모아 숲 조성 사회적기업인 트리플래닛에 전달, 5만평 규모의 숲을 조성키로 했다.

 

SK그룹 관계자는 “최종현 회장의 혜안과 통찰 그리고 실천력은 후대 기업인이 본받아야 할 가치로 인정받고 있다”며 “SK그룹은 앞으로도 최종현 회장의 경영철학을 올곧게 추구해 사회와 행복을 나누는, 존경받는 일등기업으로 지속성장해 나가겠다”고 밝혔다.